“지구는 상상 이상으로 위험한 곳이다”라고 미 항공우주국(NASA)의 케빈 잔례는 말한다. 만일 혜성의 잔해 하나만 대서양 중심에 떨어진다 해도 그 폭발로 말미암아 엄청난 재앙이 땅과 바다를 덮을 것이다. 거대한 해일이 바닷가의 도시들을 덮칠 것이다. 높이 1km 이상의 파도를 동반하는 태풍이 쿠바, 미국과 멕시코의 대서양 연안, 그리고 카리브해의 섬들을 쓸어가 버릴 것이다. 날이 저물기 전에 리오데자네이로, 살바도르, 브에노스 아이레스, 리스본, 홍콩, 싱가폴 등이 물에 잠길 것이다.
진짜 위험은 물보다는 불일 것이다. 혜성이 지구에 부딪히는 순간 오늘날 지구가 보관하고 있는 모든 원자폭탄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것 같은 대 폭발이 있을 것이다. 마침내 폭발과 큰 지진으로 땅은 무너지고 분화구는 터져 나오며 대기는 짙은 유황과 독가스로 덮이게 되어 사람들은 모두 질식사하고 만다. 그렇게 되기 전, 마지막 심판이 오기 전, 세상이 비교적 평안할 때, 오늘 우리는 참된 신앙을 가질 것을 결정해야 한다.
* 요한계시록 15장부터 드디어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후반부를 공부하 게 된다. 14장에서 세 천사의 마지막 호소가 끝난 후, 그 마지막 초청마저 거절한 사람들에게는 드디어 자비가 섞이지 않은 마지막 일곱 재앙 이 내리는 것이다. 제15장은 일곱 재앙에 대한 서론이고 제16장에서 본격적으로 일곱 재앙을 설명하고 있다.
드디어 멸망해 가는 지상의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호소는 끝났다. 이 세상에는 무서운 최후의 일곱 재앙이 내리기 시작한다. 지금부터는 모두 마지막 사건만을 다루고 있다.
요한계시록 15장은 요한계시록에서 중요한 사건이 있기 전에는 꼭 그러했듯이 예비적인 삽입 장이다. 제15장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백성들이 유리 바닷가에서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다. 아무리 무섭고 극심한 재앙이 오더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안전하게 보호를 받을 것임을 보여주시는 장면이다.
일곱 교회는 촛대 사이를 걷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되고 있다(1장). 일곱 인은 보좌 앞에 나오시는 어린양과 만물들의 찬송으로 시작된다(4~5장). 일곱 나팔은 보좌 앞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십사만 사천 인의 찬송으로 시작된다(7장). 일곱 재앙도 역시“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계 15:1~4) 구원받은 성도들의 찬송으로 시작된다. 전개될 장면들이 너무나 두렵고 떨리는 시련과 심판의 장면들이기 때문에 미리 압도당하여 절망할 지도 모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미리 승리의 장면들을 보여줌으로써 용기를 주시는 그리스도의 자세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요한계시록 15장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15장 1~4절까지는 성도의 최후의 상급이다. 그들은 유리 바닷가에 서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른다. 15장 5~8절까지는 재림 전 이 지상에 쏟아질 최후의 형벌을 위한 준비의 장면이다.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받는다.
1. 세 천사의 기별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겠는가?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계 15:1).
요한은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는 두려운 장면을 보았다. 이 재앙으로 하나님의 진노는 마쳐질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곱 재앙은 과거 어느 재앙보다도 더 극심하고 비참할 것이며 자비가 섞이지 않은 무서운 것이었다.
2. 요한은 유리 바닷가에서 누구를 보았는가?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계 15:2~3).
불이 섞인 유리 바다같은 것은 수정과 같이 맑은 장소를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것으로, 요한계시록 4:6에는“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2000년 전에는 유리가 아주 귀하여 맑고 투명한 넓은 곳을 묘사할 때 유리 바다라는 말을 썼다. 그러므로 이곳은 보좌 앞에 펼쳐진 보석처럼 빛나는 공간일 것이다. 유리 바닷가에는“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거문고를 가지고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기고 벗어났다는 것은 바벨론의 유 혹을 이겨내고 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옛날 모세와 이스라엘이 홍해에서 극적인 구원을 받은 후 건너편 바닷가에서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른 것처럼(출 15장), 이제 모든 환난을 이기고 구원받은 백성들은 아무도 부를 수 없는 구원의 노래, 체험의 노래를 부른다.
3. 그들이 부른 노래의 내용은 무엇인가?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계 15:3~4).
일곱 재앙의 고통과 환란으로부터 극적으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 성들은 하늘 유리 바닷가에서 첫째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찬송한다. 그분의 일은 크고 놀랍다. 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이하신 능력이었지 그들의 노력 때문이 아니었다.
둘째로, 하나님의 길이 의롭고 참되심을 찬양한다. 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심 때문이지 그들이 의롭기 때문이 아니었다.
셋째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송축한다. 그러므로 만국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와서 경배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노래의 요지이다.
4. 요한은 하늘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계 15:5)
여기서 증거 장막이란 하늘 성소를 말한다. 그러므로 하늘에 실제로 성전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근거가 되는 성경절 중의 하나이다. 왜 하늘 성소를 증거 장막(the temple of the dwelling of the testimony)이 라고 하는가?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기 때문이다(출 38:21; 민 9:15; 10:11; 행 7:44; 계 11:19). 그러므로 언약궤, 곧 증거궤가 놓여 있는 지성소를 증거 장막이라고 부를 수 있다. 성소 제도에서 지성소는 대속죄일에만 열린다. 그러므로 본 절에서 증거 장막이 열렸다는 것은 하늘 성소에서 대속죄일의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5. 요한은 성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는가?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계 15:6~8).
천사들이 세마포로 된 제사장 복장을 한 것으로 보아 이 천사들도 하 늘 지성소에서 봉사에 조력하는 천사들임을 알 수 있다.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진노를 담을 금 대접 일곱을 그들에게 준다. 이것은 일곱 재앙이 하나님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찼다는 것은 시내산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출 19:18)고 하였다. 연기가 찼다는 표현 때문에 하늘 성소는 연기가 찰 수 있는 어떤 건물이라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그 연기가 시내산을 덮었던 연기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영광의 구름이기 때문에 꼭 어떤 건물을 상상할 필요는 없다.
명상할 문제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은 일곱 재앙으로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은 무서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모든 재앙에서 구원을 받는다. 그들은 하늘 유리 바닷가에서 구원의 노래를 드높이 부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성경에 예언된 것이다. 성경의 예언은 한 번도 틀린 일이 없이 반드시 이루어졌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그 마지막 순간임을 거듭 가르쳐 주고 있다. 오늘 나의 결정은 무엇인가? 나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