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지구는 70억의 승객을 싣고 초속 29km라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리고 있는 비행기나 마찬가지다. 식량은 지구 거민이 겨우 26일 동안 버틸 수 있다. 그러나 핵무기는 한 사람 당 15톤씩 배당이 될 만큼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방향 계기가 고장이 나서 우리가 지금 어디를 향하여 날아가고 있는 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판이다. 우리의 목적지를 알려주고 착륙 지점을 가르쳐주는 관제탑이다.
그런데 관제탑에서 나오는 음성이 비행기의 폭발위험을 알려주면서 비행기에서 즉각 탈출하라고 호소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는가?
14장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은 그런 경고와 호소를 담고 있다.

 


* 요한계시록 14장은 요한계시록의 구조에서 가장 중심에 있으며 따라서 가장 중요한 주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전반부를 결론짓고 후반부가 시작되는 중심 되는 장이며 대쟁투의 절정이다. 14장은 멸망하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다. 14장 이후부터는 일곱 재앙과 더불어 모든 악한 세력에 대한 멸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4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째 부분은 모든 시련을 이기고 살아서 구원받을 성도들을 상징하는 144,000명이 하늘에 있는 시온산 즉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새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멸망할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 즉 세 천사의 기별이 소개되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1. 십사만 사천 명은 어디에 있었는가?

“또 내가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계 14:1).

  요한계시록 14장은 영광스러운 장면으로 시작된다. 지금까지 요한을 괴롭혔던 모든 사악한 짐승들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고 어린양과 구원받은 십사만 사천 명이 시온산에 서있는 영광스러운 모습이 전개된다. 아무리 짐승들이 날뛰어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시온산, 즉 하늘 보좌 앞에 서 있는 어린양은“일찍 죽음을 당한 것 같은”(계 5:6) 어린양인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십사만 사천 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시온 산에 서 있었다. 시온 산은 어디인 가? 시온 산은 구원과 승리를 상징하는 산이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거할 곳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용어다. 여기서 시온 산이 지상의 어떤 장소가 아닌 것은 14장 3절에서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 시온 산이“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이라고 해설하는 구절에서 명확해진다.

구약 성경의 미가는 예언하기를“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미 4:7)고 하였다. 이사야와 요엘, 오바댜 같은 구약 의 선지자들도 시온 산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받고 거할 최후의 승리의 장소로 묘사했다(사 59:20; 욜 2:32; 옵 17).

이러한 생각은 신약 성경의 히브리서에도 잘 나타나 있는데“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히 12:22)이라고 하여 시온 산이 지상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장소임을 분명히 했다.

 

2. 십사만 사천 명의 이마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계 14:1). 

  구원받은 십사만 사천 명의 이마에 어린양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다는 것은 요한계시록 13장 16절의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오른 손이나 이마에”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 것과 분명히 비교가 된다. 전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인 하나님의 인이요 후자는 짐승에게 속했다는 짐승의 표다. 마지막 날에는 이 짐승의 표가 없으면 매매도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계 13:17).
그렇다면 십사만 사천 명의 이마에 써 있는 이름, 즉 하나님의 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마에 이름이 써 있다는 것은 실제로 이마 에 글씨를 써서 달고 다닌다는 뜻이 아닌 만큼, 그 사람의 지성과 마음에 그 이름을 가진 분의 품성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것은 또한 소유와 소속을 의미하기도 한다.

 

3. 요한은 하늘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가?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 14:2~3).

  요한은 하늘에서 많은 물소리 같기도 하고 큰 뇌성 같기도 하며 거문고 소리같이 청아하기도한 노래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구원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이 보좌 앞에서 부르는 찬양의 노래 소리였다. 이 구원의 노래는 땅에서 온갖 환난을 이기고 하나님의 인을 얻은 십사만 사천 명 외에는 아무도 부를 수 없었다. 그들이 부르는 승리와 감사의 노래는 많은 물소리처럼 웅장하고 거문고 소리처럼 청아하고 아름다웠다.

 

4. 십사만 사천 명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4~5).

여기에 십사만 사천 명의 신앙적, 또 품성적 특징이 열거되고 있다.

  첫째로, 그들은“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이다. 이곳에 나오는‘여자’를 실제의 여성으로 해석하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

그러므로 이곳의 여자는 상징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성경에서는 여자가 두 가지 상징적인 의미로 쓰인다. 정결한 여인은 순결한 교회를 의미하며(계 12:1) 부정한 여자는 타락한 교회를 의미한다(계17:1~5). 더럽혀진다고 했으니 이곳의 여자는 부정한 교회다.

그러므로 십사만 사천 명은 지상의 타락한 교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타협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교회 안에 스며들어온 이교의 전통이나 의식들을 단호히 거부하고 오직 말씀대로만 살려고 결심한 사람들이다.

  둘째로, 그들은“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다. 어린양은 그리스도이시니, 십사만 사천 명은 절대적으로 예수님에게 순종하고 그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인도하시는 곳이 때로는 시련의 길일지라도 그들은 원망하지 않는다. 그분이 인도하시는 곳이 나에게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셋째로,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바쳐진“처음 익은 열매”다. “처음 익은 열매”란 무슨 뜻인가?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처음 열매”가 되었다고 말한다(렘 2:3). 그리고 그 열매를 해치는 자는 다 벌을 받고 재앙을 만날 것이라고 선언한다. 야고보는“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하나님께서“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약 1:18)다고 말한다. 그와 같이 십사만 사천 명도 종말 시대에 여러 가지 환난을 겪고 결실해서 하늘 창고에 드리게 된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첫 열매라고 부를 만 하다. 

넷째로, 십사만 사천 명은“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다”(계 1:5). 거짓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이다. 하나님께서는“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출 20:16)라고 말씀하시고 또한“거짓말하는 자는 결코”(계 21:27) 하늘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흠이 없는 자들이다. “흠이 없다”는 것은‘도덕적 완전’이나‘죄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품성의 옷을“어린양의 피에 씻어 희게”(계 7:14)한 것을 말한다.

 

 수천 년 동안이나 계속된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 공중을 날며 강력한 기별을 전하는 세 천사는 과연 누구인가?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계시를 볼 때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하는 온갖 짐승의 세력들을 보며 낙망하였다(계 1~13장). 그러나 요한계시록 14장에서 공중을 날며 영원한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향해 경고하는 세 천사의 강력한 모습을 보며 그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했을 것이다. 그 세 천사의 기별로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호소는 끝이 났으며 그 기별을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로 사람들의 운명은 영원히 결정되었다. 그 호소를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바로 마지막 일곱 재앙이 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세 천사의 사명이야말로 얼마나 중차대하고 간절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호소를 하는 그 세 천사는 과연 누구인가? 하늘의 천사들인가? 어떤 초자연적인 세력인가? 아니면 우주에서 온 외계인들인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언젠가“하늘에 나타나 큰소리로 외칠 천사들”을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 해도 우리는 그 천사들을 결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지구 역사상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시키시어 복음을 전한 일은 없으시기 때문이다. 구스 내시가 광야를 지나 갈 때, 천사를 보내면 더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에서 복음 전도에 바쁜 빌립을 보내어 구스 내시에게 전도하게 하셨다. 기독교 역사상 어떤 신앙 부흥도, 어떤 전도 운동도 천사에 의해 주도된 일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마지막 호소를 하는 일을 천사를 시켜 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렇다면 세 천사는 누구인가? 세 천사는“세상에 영원한 복음을 전달하는 하나님의 남은 자손”을 상징한다.

 

5. 첫째 천사가 전하는 기별은 무엇인가?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 라”(계 14:6~7).

  첫째 천사는 공중을 날며 큰 음성으로 영원한 복음을 외치고 있다. 이 천사는 실제로 하늘의 천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천사라는 헬라어 앙겔로스(angelos)는 성경에서 사자(使者, messenger)라고 자주 번역되며 어떤 특별한 사명을 가진 사람을 의미할 때가 많다(마 1:2; 눅 7:24).  그러므로 이 천사는 마지막 시대에 이 죄 악 세상을 향하여 강력하게 복음을 전하는 어떤 신실한 사람들이거나 복음 운동을 상징할 것이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공중을 난다는 것은 이 복음이 급속도로 전파될 것을 의미하며“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큰 음성으로 외친다는 것은 이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을 상징하고 있다. 세 천사가 복음을 전하는 마지막 시대에“하나님의 남은 백성”을 대표하 는 상징이라면 그 세 천사가 전하는“기별”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영원한 복음”이다.

  그러므로“세 천사의 기별”은 사실은“세 천사의 복음”이라고 해야 옳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성경은 공중에 날아가는 천사가“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계14:6)을 가지고 있다고 단순하고도 확실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원한 복음의 내용은“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기별이다. 그러므로 세 천사의 기별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순종하고 경배하라는 단순한 기별을 다시 한번 호소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때“하나님을 경배”하는 문제가 최대의 쟁점이 될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첫째 천사의 기별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창조주 하나님을 경시하고 이성과 과학을 맹신하며 진화론이 팽배한 마지막 시대를 향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돌아오라는 마지막 호소다. 둘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호소이다. 즉, 참된 안식일을 지키라는 권면이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 중 네째 계명에서 가져온 표현이다. 네째 계명은“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하고 그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기를“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에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고 그러므로“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출 20:9~11)다고 말하고 있다. 안식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 배한다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첫째 천사의 기별은 안식일을 고의로 범하고 일요일을 지킴으로써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도 희망이 있는 것은 이 마지막 호소가 지금도 발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남은 시간은 짧을 것이다. 곧“그의 심판하실 시간이”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6. 둘째 천사의 기별은 무엇인가?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계 14:8).

  둘째 천사의 기별이 첫째 천사의 기별의 뒤를 따르기 때문에 두 기별은 서로 연관이 있고 같이 전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천사의 기별은 첫째 천사의 기별, 즉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기별을 거절한 사람들에 대한 경고이며 서로 연관되어 이어지는 기별이다.

천사는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하였다. 요한 당시 바벨론은 이미 멸망하여 없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바벨론은 상징적으로 쓰였음에 틀림없다. 바벨이란 말은 원래‘신들의 문’이라는 뜻이지만 바벨탑과 연관되면서 ‘혼돈’혹은‘혼합, 혼잡’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 바벨론이“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일 것이다. 그렇다면 둘째 천사가 무너졌다고 탄식한“큰 성 바벨론”의 정체는 무엇일까?  성경에서 바벨론이란 항상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대해 사용된 이름이다. 고대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솔로몬의 성전을 불태웠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포로로 끌고 갔다. 바벨론이 멸망한 후에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을 핍박하는 로마를 바벨론이라고 불렀다(벧전 5:13). 로마가 멸망한 후에는 바벨론의 정신을 이어받아 하나님을 대적하며 성도를 핍박하고 “때와 법을 변개코자”(단 7:25)하는 종교적 세력이 바벨론이라고 불린다.

큰 성 바벨론의 정체를 알 수 있는 한 가지 힌트가 성경에 주어져 있다. 그것은 그가“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벨론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연상하게 한다.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인하여 끊침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수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렘 51:6~7).   요한계시록 17장에서 요한은 큰 바벨론인 음녀(계 17:5)를 묘사하면서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계 17:2)고 하였다. 땅의 임금들과 더불어 음행하였으니 바벨론은 땅의 임금 중의 하나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그 바벨론이“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계 17:6)에 취하였다고 하였으니, 여기 나오는 큰 성 바벨론은 요한계시록 17장에 등장하는 음녀와 같으며, 세상의 왕이나 정치 세력이 아닌‘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배교적 종교세력(worldwide apostate religious system)’일 것이다. 이 세력에 대하여서는 우리는 13장에서 이미 공부하였다. 즉 마흔두 달 동안 성도들을 핍박하는 세력인 것이다.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말이 두 번 반복된 것은 긴급성과 확실성을 말해 주고 있다. 여기서 무너졌다는 말은 과거형으로 나타나지만 헬라어 문법상 미래 과거형이다(futuristic aorist). 즉 그렇게 될 것이 너무도 확실하여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표현하는 용법이다. 그러면 바벨론이 무너질 것이라는 것은 무엇이 무너질 것이란 말인가? 이미 공부한 대로 마지막 시대에 나타날 바벨론(End-time Babylon)은 배교적 종교세력이다.

그러므로 바벨론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성도들에 대한 핍박으로 그 복음의 순결성이 무너질 것이라는 말이다. 둘째로 전세계를 움직이던 그 세력이 힘을 잃고 무너질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세상의 권력들과 손을 잡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진노의 포도주를 함께 마시던 자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마침내 무너질 것이다. 바벨론이 무너질 것이라는 소식은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백성들에게는 기쁘고도 반가운 소식이다.

 

7. 세 번째 천사의 기별은 무엇인가?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9~12).

  셋째 천사가 둘째 천사의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외쳤다는 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도 둘째 천사의 기별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 천사의 기별은 연속하여 진행되는 기별이기 때문에 삼중 기별이라고도 한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무너질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기별을 거절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할 심판을 묘사하고 있다. 계속하여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속해 있으면 마침내 짐승의 표를 받게 되고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 그리고는 무서운 유황불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짐승의 표란 무엇인가? 성경은 그 표를 이마에나 손에 받는다고 하였다. 이마는 지성을 나타내고 손은 행동을 뜻한다. 그러니 그들의 사고 방식과 행동이 짐승에게 매어 있고 짐승의 뜻을 따라 행한다면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다. 이미 13장에서 연구한 바와 같이 상당수의 요한계시록 연구자들은 짐승의 표를 일요일 준수와 동일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인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최후의 영적 대쟁투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진다면 안식일 준수를 고의로 거부하고 일요일을 준수하는 것이야말로 짐승의 핵심주장이며 짐승의 대표적인 트레이드 마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8. 성도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이 무서운 대쟁투의 막바지에 하나님의 진실된 성도들이 당하는 고통 은 극심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되는 것은 인내이다 (계 13:10). 대쟁투의 초점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충성스럽게 지키는 사람들이다. 예수 믿음이란 헬라어 구문론의 목적의 소유격으로 해석하여‘예수를 믿는 믿음(faith in Jesus)’으로 해석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을 확신하는 동시에 계명을 지키는 것에도 확실한 사람들인 것이다. 성경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말씀하시며,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5:14; 14:15)고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며 계명을 지키는 삶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9. 마지막 시대에 충성스럽게 살다가 죽는 사람은 왜 복이 있는가?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지 않고 오직“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의 칠복 중 하나이다. 마지막 시대에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왜 복이 있는가? 첫째는 마지막 시대에 무서운 환난과 핍박이 성도들에게 몰려올 것인데 그것을 당하지 않고 주 안에서 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쉼은 악인들이“밤낮 쉼을 얻지 못” (계 14:11)하는 것과 대조된다. 선지자 이사야는“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니라”(사 26:20~21)고 하였다. 둘째는 성도들에게는 저희 가 살아 있을 때에 행한 것에 대한 상급이 영원히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4장 14~20절까지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의 장면이다. 의인의 심판은 익은 곡식을 거두는 것으로 표상되고 악인의 심판은 익은 포도송이를 거두는 것으로 상징되었다.

 

10. 첫 번째 천사가 구름 위에 앉으신 이에게 무엇을 요청하였는가?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 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계 14:14~16).

죄악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인 세 천사의 기별이 끝난 후, 드디어 세상의 종말이 오고 추수가 시작된다. 요한계시록 14:15 이후에 나타나는 세 천사들의 사명은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세 천사와는 달리 인자가 하늘 성전에서 제사장 봉사를 마치고 흰 구름 위에 앉아 이제 막 지상에 재림하려 할 때에 시작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모두가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데 토요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보신일이 있으십니까?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신 일이 있으십니까? 그런데 그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고 성경에 말씀하신 그대로라고 하면 여러분은 아마도 놀라실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다 오늘날의 토요일인 안식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아담과 하와에게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신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십계명의 넷째 계명을 신실하게 지키기 위하여 안식일을 지켰던 것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도 신실하게 안식일을 지킨 것은 성경이 증명하고 있습니다(행 16:13; 17:1).

오늘날에도 성경 말씀 그대로 순종하며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재림교회)입니다. 현재 재림교회는 1400만 명의 교인들이 207개국에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세계적인 교회입니다.

“구름 위에 앉은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즉, 인자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묘사하는데 쓰였다(단 7:13~14). 그가 금 면류관을 가졌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승리를 의미한다. 첫 번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성전 봉사가 이제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향하여“낫을 휘둘러 익은 곡식을 거둘 것을”간청한다. 그리고 드디어 인자는 추수를 감행한다. 세상의 역사가 끝나는 순간이다.

 

11. 두 번째 천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가졌는가?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계 14:17).

두 번째 천사도 성전에서 나왔다. 구원과 심판이 다 성전에서 나오는 것이다. 같은 성전에서 나왔지만 두 번째 천사의 임무는 악인을 추수하는 것이다.

 

12. 세 번째 천사는 무엇을 하였는가?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계 14:18~20).

  세 번째 천사는 심판과 형벌을 의미하는 불을 다스리는 천사다. 의인의 추수는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심판은‘불의 천사’에 의해 집행된다. 악인의 심판은 포도를 거두어 포도주 틀에 던지는 것으로 표상되었다. 그 심판은 성 밖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여기서 성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생각한다면 심판은 새 예루살렘성을 제외한 온 세상에 임할 것이다. 그들의 피가 일천육백 스타디온에 퍼졌다는 것은 상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피가 강처럼 흘러 말굴레까지 닿았고 약 300km나 퍼졌다는 것은 일곱 재앙을 통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우며 엄격한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온 세상에 미칠 것이고 하나님께 피난처를 구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할 것이다.

더 이상 자비가 베풀어지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수많은 초청과 호소를 거절한 사람들은 마침내 그 무서운 날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피뿌린 옷을 입고”(계 19:13)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계 19:15) 밟으실 날(심판의 날)이 곧 올 것이다.

 


 

명상할 문제  

세 천사의 기별은 죄로 멸망할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다. 이 호소가 끝난 다음에는 즉각 이 세상에 무서운 일곱 재앙이 내리고 드디어 세상의 마지막이 오는 것이다. 아직은 돌아올 수 있는 은혜의 시기다. 나는 혼란한 바벨론에서 나와서 창조주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나는“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계 14:12)을 지키고 있는가?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공부하신 내용에 대한 문제를 풀어 보시겠습니까?

1. 144000 명이 서 있는 시온 산은 어디인가?
2. 다음 중 144000 명의 특성이 아닌것은 무엇인가?
3. 세 천사의 기별의 핵심은 무엇인가?
4. 세 천사는 무엇을 말하는가?
5. 구름 위에 앉은 사람의 아들 같은 이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