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교는 인간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전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 유일하게 종교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루이스 뻘콥은 우리는 “불가피하게 종교적”이라고 말하고, 종교학자들은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종교적”이라고 말합니다. 죠셉 게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관찰한 바로는 모든 인간 사회에 종교가 존재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은 그 사회가 아무리 미개한 사회라 할지라도, 또는 그 사회가 아무리 문명화되고 진보된 사회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종교를 갖는 것은 아주 평범하고 보편적인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은 비록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나름대로의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를 갖는 일을 망설일 필요는 없습니다.

 

2. 종교는 인간의 가장 탁월한 특징입니다.

전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서 인간이 모든 면에서 탁월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능력에 있어서는 동물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심지어 도덕적 능력에서도 어떤 사람은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동물이 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양심적이기까지 하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종교심이 그림자도 없습니다. 종교는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종교를 가질 때 가장 인간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회의론자요 초자연의 반대자인 흄(Hume)까지도 한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종교가 전혀 없는 사람을 찾아 보라. 만일 찾는다면 분명히 그들은 어느 정도 짐승에서 멀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3. 종교는 인간의 진정한 필요를 채워줍니다.

요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바라고 또 행복을 얻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경제학에서는 이 행복을 복지사회에서 찾았고 복지사회는 충분한 자원과 재화와 용역을 가지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물질의 풍요가 곧 인간에게 행복을 준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행복을 위하여 일하게 하는 동기는 욕망인데 이 욕망은 무한한 반면 이를 충족시켜 줄 물질은 유한하기 때문에 불행이 있습니다.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욕망이 작아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의 욕망은 물질과만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명예, 권력, 그리고 사랑같은 것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욕구도 있습니다.

당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십시요. 당신은 종교를 가짐으로써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약속하셨습니다.

흄은 말하기를 “종교는 개개인에게 다른 어떤 제도로부터도 얻어낼 수 없는 것들을 제공해 준다. …종교는 일차적으로는 개인들에게 생활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생활의 결과에 대하여 만족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개인들이 사회 생활에서 겪게 되는 온갖 짜증스럽고 불만스러운 문제거리들을 참아 나갈 수 있게 해 주며, 더 나아가 한 사회에게 선악을 판가름할 수 있는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제시해 줌으로서 모든 사회 문제를 풀어 줄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종교는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윤곽을 제시해 주고 더 나아가 인류의 구원이라는 궁극적인 문제에 대하여도 구체적인 청사진을 펼쳐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종교가 개인과 사회에 대하여 갖는 기능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1. 진 화 론

1858년,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82, 영국)은 린네 학회에서 지구 상의 모든 생물은 생명의 자연 발생, 돌연변이, 적자생존과 자연도태 등의 진화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는 가설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주장은 중세 교회의 횡포에 지친 당시 자유주의적 사상가들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사회적으로 큰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1862년 불란서의 루이스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 1995)는 실험을 통해 자연 발생설을 부정하였으며, 1865년 오스트리아의 멘델(Gregor Johann Mendel 1822-84)은 유전법칙을 발표하여 돌연변이에 의한 진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한낱 가설에 불과한 진화론이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적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혹 당신도 진화론의 희생자는 아닙니까? 우리 인류가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다는 이 가설을 당신도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왜 지금도 사람으로의 전이과정 중에 있는 원숭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진화론은 결코 과학적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증명되지 못한 가설에 불과합니다.

 

2. 불가지론

영국의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95)는 인간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어서 사물의 본질이나 참다운 실재에는 이를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인데 정말 그렇까요? 우리의 현실은 경험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믿고 있습니다. 더구나 인간의 기원에 관한 것은 우리 인식 능력의 한계를 한탄하며 덮어두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의 기원은 우리 삶의 목적과 가치를 결정해 주는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과목에서 공부하겠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라고 불리워집니다. “계시”란 헬라어로 “아포칼륍시스” 인데 이는 “덮개를 벗김”(an un- veiling)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기원에 관한 덮개를 벗기시고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창조에 관한 가설이 아니라 창조자의 진술을 대하게 됩니다.

 

3. 창 조 론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 지구는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과 설계에 의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웅장한 언어로 선포하고 있으나 증명하려고는 시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당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창조자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것이든지 저절로, 혹은 우연히 생겨난 것은 없습니다. 하물며 세상과 인간이 우연히 생겨났다고 하는 가정은 우리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합당치 않습니다. 창조론이나 진화론이나 현대의 과학을 가지고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지는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불신하는 자들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 14:1)

 

B.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명

1. 모든 일에는 제 1 원인이 있습니다(인과론적 논증)

눅 3:38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이 세상 어떤 생물이든지 반드시 부모가 있습니다. 사람도 최초의 부모가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성경은 그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연체동물이나 아메바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이른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어떤 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계 바늘이 돌아가는 것은 태엽이나 시계추나 진동자라고 하는 제1운동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절로 혹은 우연히 어떤 현상이 일어나거나 존재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2.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질서와 법칙들은 설계자가 있음을 증명합니다(목적론적 논증)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현대 문명이라고는 한번도 접해본 일이 없는 어떤 사람이 사막을 지나가다가 시계를 주웠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는 마을에 가지고 와서 이 정교한 시계가 어떻게 해서 사막에 떨어져 있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셋으로 나누일 것입니다.

⑴ 우연이다

⑵ 알 수 없으므로 덮어 두자

⑶ 당장 증명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가 만들었음에 틀림없다.

당신은 어떤 주장을 지지하십니까? 우리는 세번째 주장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구와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멕시코에는 약 30종의 유카식물이 있습니다. 그 유카들은 유카나방에 의해서만 수분이 가능하고, 유카나방의 각 종들은 각각의 유카 종자에서 유생이 자랍니다. 둘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어서 피차의 존재는 생존에 필수적입니다. 유카 나방이 없이는 유카식물이 씨를 맺지 못할 것이고, 유카종자가 없이는 유카나방의 유생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레톤(Moreton)만의 무화과와 터어키의 스미르나(Smyrna) 무화과는 오직 나나니벌(Wasp)에 의해서만 수분이 가능합니다. 과거에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에서 이 나무들을 가져다 심었지만 열매를 얻지 못하다가 나나니벌을 들여온 다음에 수분이 가능했습니다.진화론자들에 의하면 이들 곤충과 식물이 우연히도 함께 출현했다고 합니다. 그럴수 있을까요? 수학자들은 수많은 진화 과정에서 이 둘이 같은 장소에, 동시에 출현할 확율은 영(0)이라고 합니다. 전혀 가능성이 없다는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은 기원전 5억년 쯤에는 상황이 달랐을 것이고 우연히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당신은 정말 그런 우연을 믿습니까? 그러면 왜 고양이가 우연히 닭을 낳을 수는 없을까요? 왜 참새가 우연히 매미를 낳을 수는 없을까요? 도무지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태양계의 질서,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 신비한 생물체의 구조와 조화 이런 것들은 분명히 치밀한 설계와 계획의 산물이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3. 인간의 양심이 하나님을 증명합니다(도덕론적 논증)

롬 2:14, 15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인간은 누구나 자기 의사에 혹 동의하고 혹 반대하는 양심의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양심은 어느 정도 교육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사실이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양심은 절대자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욕망에도 불구하고 해서는 안된다는 판단을 가지고 있고, 양심을 거역했을 때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때로는 어떤 벌을 받게 되리라는 생각도 갖습니다. 이와 반대로 선행에 대한 보상 심리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두 살 때 질병으로 귀와 눈이 멀고 후각 기능까지 상실된 헬렌 켈러(1880- 1968)를 기억하십니까? 그녀가 다른 사람과 통화하는 법을 배운 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녀는 곧 유쾌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분이 계시다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분의 이름을 몰랐어요”

당신의 양심도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4. 특별한 종교적 경험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합니다(경험론적 논증)

행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벧후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로마인들의 박해가 심했던 1-2세기 동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화형대에서, 짐승의 밥으로, 참수형으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지금도 로마에 가면 카타쿰베라는 지하 묘지가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 이곳에서 2-3백년 동안 숨어 살았습니다. 약 50군데의 지하 묘지에서 500만 구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 습기차고 음냉한 지하 묘지에서 대를 이어 살며 믿음을 지켰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사랑을 여러 경로와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생명을 바쳐 전해준 귀한 복음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당신도 믿어 보면 그분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이 정말 계시지 않다면 그 많은 박해 자체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C. 신앙은 하나의 선택입니다.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롬 3:3,4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믿음이 어리석어 보이고 황당 무계해 보일지 모르나 실상 우리의 삶은 온통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탈 때도 믿고 타는 것입니다. 사실상 믿음이란 믿기를 원하느냐 원치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웃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도 첫째는 믿기 때문이고 둘째는 빌려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지 못하는 것은 많은 경우 당신이 원치 않기 때문일 뿐입니다.

신앙은 당신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이 계신 것은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당신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어 손해볼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다가 정말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번은 노먼 필 박사가 주물공장을 방문했을 때 인부는 놋쇠를 녹이는 흑연로를 보여 주었습니다. 화로는 백색광을 내며 달아 있었습니다. 인부는 달아오른 화로를 꺼내 망치로 여러번 내리쳤지만 움푹 움푹 들어갈 뿐 깨어지지 않고 매우 탄력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창고에서 식은 화로를 꺼내 조그마한 망치로 손목만 약간 움직여 충격을 주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신앙이란 당신의 삶에 열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 열기는 당신의 삶에 탄력을 선물할 것입니다. 좀처럼 부서지지 않는 삶의 힘이 바로 신앙에 있습니다. 당신도 신앙을 갖기로 선택해 보십시오.

1. 성경 스스로가 증거합니다.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2. 성경을 연구해 봄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루 월리스” 장군은 교회에 드나드는 무지한(?) 사람들을 깨우치고 예수님을 반대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2년 간 성경을 연구한 끝에 오히려 그리스도의 승리를 찬송하는 ?벤허?라는 작품을 저술하게 되었습니다.

 

3. 성경의 통일성이 그 증거입니다. 사 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4. 성경의 예언 성취가 그 증거입니다.

사 46:9, 10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사 42: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⑴ 성경은 고대 바벨론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예언하였습니까?(사 13: 19, 20)

☞ 바벨론은 아모리 왕국의 제6대 왕이자 가장 유명한 함무라비(BC 1792- 1750)가 주변 도시국가들을 정복하고 남부 메소포타미아 전부와 앗시리아 일부를 합한 왕국을 건설해 수도로 삼을만큼 지리적 이점과 정치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이때부터 바벨론은 상업적?행정적 측면에서 주요 중심지가 되면서 부와 명성을 날렸습니다. 바벨론은 느부갓네살이 세운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로 가장 영광스러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BC 539년 페르시아의 고레스에게 멸망하였고, 페르시아가 알렉산더에게 정복되었을 때는 이에 저항하지 않고 항복하였습니다. 알렉산더는 이곳을 자신의 제국의 수도로 삼았지만 알렉산더 사후 장군들 사이의 권력투쟁을 걸쳐 BC 312년 셀레우코스 왕조에게 넘어갔습니다. 셀레우코스는 티그리스 강변에 새로운 수도 셀레우키아를 건설하였고, BC 275년 바벨론 주민들이 그곳으로 이주함으로써 바벨론이 황폐화되리라는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⑵ 성경은 고대 두로에 대해 무엇이라고 예언하였습니까?(겔 26:12- 14)

☞ 두로(Tyre)는 지중해와 그 밖의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한 상업도시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섬으로 되어 있는 두로를 BC 585년부터 573년까지 13년 간 포위하였으나 결코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했습니다. BC 333년 이수스 전투에서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군대를 격파하자 시돈과 페니키아의 다른 도시들은 즉각 항복했으나 두로는 이에 저항하였습니다. 알렉산더는 빠른 시간에 두로를 정복하기 위해 옛 도시 두로에서 목재와 암석들을 가져다가 육지에서 섬까지 길이 800m, 폭 60m의 둑길을 건설하여 7개월 만에 두로를 점령하였습니다. 약 3만 명이 노예로 팔렸고 1만 명의 주민이 처형되었습니다. 그후 알렉산더가 건설한 둑길이 그대로 남게되어 두로가 위치한 섬은 반도가 되고 성경의 예언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⑶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대해 어떤 예언을 하셨습니까?(마 24: 1, 2) 또 예루살렘의 멸망 때 어떻게 행동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마 24:15-19)

☞ 서기 65년, 로마 총독 플로루스(Florus, 64-66)의 폭정으로 유대인들의 반란이 시작되자 유대 여러 도시로 확산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로마의 네로 황제는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세스티우스(Cestius) 장군에게 진압명령을 내렸습니다. 서기 66년, 세스티우스는 2만 3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섯달이 지난 후 세스티우스는 어떤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갑자기 포위를 풀고 퇴각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퇴각하는 로마군을 추격하여 6천 여명을 살해하고 막대한 양의 전리품을 노획하였습니다. 이때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예언을 기억하고 예루살렘성을 빠져나와 요단 동편 ?펠라?에 정착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상황으로 보아 어리석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르티우스의 이상한 퇴각 소식을 들은 네로는 가장 능력있는 장군 중의 하나인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에게 반란을 진압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아들 티투스(Titus)와 함께 6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북부 갈릴리 지역과 여러 도시를 정복하던 중, 기원 68년 겨울 네로의 자살로 로마의 새 황제가 되자 자기의 아들 티투스를 보내 예루살렘을 정복하게 하였습니다. 기원 70년 2월, 8만 명의 로마군은 수천개의 공성 망치와 공성포를 가지고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습니다. 기근이 예루살렘 성읍을 휩쓸고 동물들이 없어 7월 17일에는 매일 드리는 희생제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여자들은 자기 죽은 자식을 먹고, 성인 남자들은 새의 똥 얼마를 놓고 죽음의 결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결국 9월 8일 예루살렘이 정복되고 성전은 불타버렸습니다. 100만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예루살렘성은 서쪽 벽(현재의 통곡의 벽) 하나를 제외하고는 돌 위에 돌 하나도 겹놓이지 않고 파괴되었습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로마 군인들 사이에 예루살렘 성전 돌 사이에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퍼져 모든 돌들이 제거되었다고 합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예언은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5. 성경의 과학적 사실들이 증명합니다.

⑴ 하나님께서는 출생 후 몇일 만에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까?(창 17:12)

<피의 응고 과정>

① 혈액이 체외로 나오면 혈소판이 파괴되어 트롬보키나제(Thromboplastin)라는 효소가 나온다.
② 토롬보키나제는 Ca++의 도움을 받아 프로트롬빈 효소를 트롬빈으로 활성화 시킨다.
③ 트롬빈은 피브리노겐을 피브린으로 만든다.
④ 피브린은 혈구를 그물 속에 싸서 혈병을 만들어 응고한다.
파괴 혈소판 → 트롬보키나제 ↓ 프로트롬빈 → 트롬빈 ↑ ↓ Ca 피브리노겐 → 피브린+혈구→혈병→응고

1935년 코펜하겐 대학의 담(H. Dam)은 닭의 출혈을 방지하는데 유효한 음식물의 성분을 비타민 K(Koagulation:응고성)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이 비타민 K는 소화관 내에서 세균에 의해 합성되는데 이것은 간에서 프로트롬빈이 합성될 때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세균에 오염될 기간이 없었기 때문에 비타민 K와 프로트롬빈이 부족하여 만일 출혈이 있을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후일 스칸질로(Nathan Scan- zillo)는 그의 논문에서 비타민 K와 프로트롬빈의 양이 생후 3일이 되면 정상인의 33%에 달하고, 이후 점차 증가하여 8일 째에는 정상인보다 더 높은 110%까지 올라갔다가 그 후로는 100%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앞 쪽의 도표가 이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후 8일된 아이는 평생의 어느날 보다도 응혈소를 더욱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할례에 가장 안전한 날이 됩니다. 생후 8일은 인간이 피의 응혈 과정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갖고 있지 않을 때 ?비타민 K?의 창조주께서 정해 주신 날입니다.

 

⑵ 성경은 하나님께서 바람에 무엇을 정하셨다고 하였습니까?(욥 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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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에 갈릴레오는 흡입 펌프가 10.33m 이상의 깊이에 있는 물을 빨아올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공기가 무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증명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기의 압력을 최초로 측정한 사람은 갈릴레오의 제자였던 토리첼리(Evangelista Torricelli : 이탈리아. 1608-1647)입니다. 그는 갈릴레오의 발견에 기초하여 대기압으로 10.33m 높이의 물기둥을 지지할 수 있다면 물보다 13배(정확하게는 13.6g) 가량 무거운 수은 기둥은 76cm를 지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1643년 토리첼리는 한끝을 봉한 긴 관에 수은을 채우고 수은 속에 거꾸로 세워 유리관 꼭대기에 진공이 생기고 76cm의 수은 기둥이 생기는 것을 통하여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였습니다. 수은주 76cm와 비기고 있는 대기의 압력을 1기압이라고 합니다.

대기의 압력은 지면의 높낮이에 의해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지면이 높은 곳은 낮은 곳에 비해 대기의 압력이 낮습니다. 대기압이 높은 곳을 고기압, 낮은 곳을 저기압이라고 부르는데 이 기압 차이로 말미암아 바람이 발생합니다. 성경은 이 기압 차이를 정하시고 바람을 일으키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토리첼리가 공기의 무게와 기압을 증명하기 수천 년 전에 성경은 “바람의 경중”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단순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⑶ 성경은 비가 오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였습니까?(욥 36:27-29)

☞ 물이 증발, 응결, 강수의 세 단계를 거쳐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순환과정이 최초로 완전히 이해된 것은 16, 17세기 경 페라울트와 마리오테의 실험 결과에 의한 것입니다. 이 두 과학자는 강수(降水)현상으로 세느 강의 흐름을 설명하였습니다. 비나 눈의 형태로 육지에 내린 물은 64%가 지표면이나 식물에 의해 증발하여 대기 중으로 되돌아 가고, 25%는 하천수가 됩니다. 11%는 지하수로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 갑니다. 이러한 물의 순환 작용을 성경은 수천 년 전에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⑷ 하나님께서는 문둥병에 걸린 사람을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그리고 시체를 만진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레 13: 45,46; 민 19:11,19)

☞ 1840년대에 비엔나의 유명한 교육병원의 하나인 ?알레게마이네 크라켄하우스? 병원에 있는 산부인과 병동은 유명한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치사율이 6명의 환자 중 1명 꼴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의사와 학생들이 검시실에서 시체를 만진 손을 씻지 않은 채 환자들을 검진하였습니다. 이 병동의 ?이그나츠 세멜바이스?라는 젊은 의사가 죽은 환자들 거의 대부분이 의사와 학생들의 검진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손을 씻는 규칙을 마련하였는데 놀랍게도 치사율이 극도로 줄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세멜바이스는 동료 의사들의 편견과 멸시로 그 병원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손과 의료기구를 씻는 방법이 소개된 것은 1878년 경입니다. 1960년에 이르러서야 ?뉴욕주립위생소?에서 손씻는 방법에 관한 책이 발행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여러 세월동안 수많은 희생을 치루고 배운 세균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성경은 3,500년 전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⑸ 성경은 지구가 어디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까?(욥 26:7)

옛날 바벨론 사람들은 한 가운데 땅이 있고 하늘을 산이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하늘은 산이 떠받치고 해나 달은 배에 실려 움직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바다 중앙에 산과 땅이 있고 그 둘레를 해와 달이 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16세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1543년 폴란드의 천문학자인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지구가 둥글며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과 자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고, 그 후 아이삭 뉴튼(1642-1727)에 의해 지구가 허공에 떠 있으며 태양과 지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인력이 있어 지구를 붙잡고 있다는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3,000년 전에 이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충분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사람은 무엇으로 의롭게 됩니까?(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2. 왜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수 없습니까?(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7)

 

3. 어떻게 해야 믿음이 생기고 자라게 됩니까?(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4.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⑴ 히 11:6a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⑵ 히 11:6b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⑶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⑷ 요 3:16a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⑸ 요 3:16b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성경은 믿음의 가치를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6.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신 것은 우리를 그 분 안에서 무엇이 되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까?(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21)

 

7. 칭의에 대한 말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 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 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 4:5-8)

 

8. 칭의된 자에 대한 말씀.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누가 정죄하리요 .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3,34)

 

9. 칭의의 정의

칭의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시며 그들의 죄와 형벌에서 자유롭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법적 행동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 없다고 선언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으로 값없이 우리 죄를 없애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해서 벌받게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내릴 진노를 멈추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와 우리가 가진 믿음으로 진노를 거두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이전 시대에 죄지은 자들을 벌하지 않았던 것도 실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들의 죄를 없애 주실 때를 기다리신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공정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그들의 죄를 제거해 주셨기 때문에 같은 방법으로 죄인을 받아들여 주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죄지은 자를 용서하시고 무죄를 선고하신 것이 불공평한 일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죄를 제거하여 주신 예수를 믿은 그 사실에 근거해서 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롬 3:22-26 현대어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