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다 모아도 인구가 얼마되지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은 각 분야에서 뛰어나며 노벨상을 휩쓸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노벨 경제학상의 65%, 물리학상 의 32%, 의학상의 23%, 화학상의 11% 그리고 문학상의 7%는 유대인들에게 수여되었다. 유대인들은 무서운 고난과 박해를 당하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뛰어난 사람들을 배출하는가 하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연구 과제가 되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그렇게 탁월한 것은 그들의 종교적 가정교육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중 에서도 유대인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성경을 읽는 것이 그들을 그렇게 뛰어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유대인 어머니는 아이들의 침대에서 성경을 읽어주며 하루를 마감한다. 그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큰 꿈을 갖게 하고 건실한 삶을 살게 하며 언어에도 남다른 능력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성경이야말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책이며 영감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 제11장을 시작하며…  요한계시록 11장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그 백성을 핍박하는 세력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과 성도들이 최후의 승리를 거둘 것을 예언하고 있다.


 

1. 천사는 요한에게 무엇을 측량하라고 하였는가?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계 11:1).

천사가 성전을 측량하라고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었다고 하였다. 요단강 계곡에서 자라는 이스라엘의 갈대는 길고 똑바로 크기 때문에 길이를 재는 자로 쓰기에 알맞았다. 천사는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하였다. 600여년 전에 에스겔도 이상 속에서 어떤 사람이 성전의 각 부분을 측량하는 것을 보았다(겔 40:3~43:12). 이 측량은 대속죄일에 있었다. 그리고 세 가지 것을 측량하였는데, 바로 성전(겔 40:3~43:12)과 제단(겔 43:13~17)과 사람들(겔 44:1~48:35)이었다. 요한계시록 11장 1~2절의 장면도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에스겔의 이상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에스겔의 이상은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1장 1~2절이 예루살렘 성전을 자세히 살피라는 말 씀은 물론 아니다. 요한이 계시를 볼 당시에는 예루살렘의 성전 건물은 이미 파괴되어(A.`D. 70) 세상에 없었기 때문이다.

 

2. 얼마나 오랫동안 이방인들은 거룩한 성을 짓밟을 것인가?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계 11:2).

요한은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는 말을 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성전 밖 마당은 성전의 구조에서 이방인들을 위한 뜰이었다. 이방인들은 여기까지밖에 들어갈 수 없었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심판하지도 말고 혹은 인치지도 말고 그냥 두라는 말씀이 된다.

재림 전 심판은 구원 얻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것이다. 이방인들은 원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곳의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성전 뜰에 있는 이방인들이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참된 이스라엘은 되지 못하여 이교의 습관을 그대로 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바로 그들이 마흔두 달 동안이나 하나님의 거룩한 성, 즉 하나님의 신실한 성도들을 박해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렇다면 성전 마당에 거하면서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이나 짓밟을 존재는 도대체 누구일 것인가?

우선 성경 예언에서 마흔두 달이 어떤 기간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흔두 달, 1260일, 한 때 두 때 반 때에 대한 일곱 번의 성경상 기록

1. 다니엘서 7장 25절 :한 때, 두 때, 반 때

2. 다니엘서 12장 7절 :한 때, 두 때, 반 때

3. 요한계시록 11장 2절 :마흔두 달

4. 요한계시록 11장 3절 :일천이백육십 일

5. 요한계시록 12장 6절 :일천이백육십 일

6. 요한계시록 12장 14절 :한 때, 두 때, 반 때

7. 요한계시록 13장 5절 :마흔두 달

 

* 한 때는 한 해를 의미 :12달 × 30일 = 360일

* 두 때는 두 해를 의미 :24달 × 30일 = 720일

* 반 때는 반 년을 의미 : 6달 × 30일 = 180일


42달 = 1260일

 

요한계시록은 마흔두 달과 일천이백 육십 일과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표현을 모두 다 사용하여 그것이 같은 기간을 말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기간은 거룩한 성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교회가 심각하게 고통을 당하는 기간으로 성경에 자주 나오므로 실제적인 1260일, 즉 삼 년 반의 기간일 리는 없다. 기원 후 2000년의 역사에서 겨우 삼년 반을 가지고 성경이 그렇게 비중있게 다룰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예언적인 기간으로 계산하여야 한다. 성경에서 예언상 하루는 일 년(민 14:34`;`겔 4:6)으로 계산하므로 마흔두 달 즉 일천이백육십 일은 1260년이 된다.

그렇다면 126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성도들을 괴롭히며 짓밟은 존재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우리는 몇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이 존재는 한 사람일 리가 없다. 한 사람이 그렇게 긴 기간 동안 성도를 핍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 존재는 분명히 역사에 등장하 는 세력이어야 한다. 1260년이란 기간은 긴 기간이기 때문에 숨어서 그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성전 밖 마당에 있으면서 그 일을 하였으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종교적인 세력일 것이고 그렇게 긴 기간동안 핍박을 할 수 있었으니 정치적인 권력도 가진 존재일 것이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 세력을 역사에서 찾아낼 수 있다. 1260년(A.D. 538~1798)동안이나 계속된 중세의 긴 암흑시대 동안 누가 세상의 권력보다 더 강한 힘을 행사하며 성도들을 파문하고 종교 재판에 회부하고 화형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는가? 그것은 중세 로마 교황권의 부정적인 측면이었다. 요한 바오로2세도 로마 교황권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사죄한 일이 있다. 오죽하면 역사가들이 그 시대를 암흑시대라고 부르겠는가? 1260년동안 성도들을 짓밟을 이 세력의 정체와 성격에 대하여는 요한계시 록 13장에 자세히 다시 언급되기 때문에 13장에서 다시 연구하기로 한다.

 

3. 두 증인은 무엇이며 그들은 1260년 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계 11:3,4). 

성도들이 1260년 동안 시달림을 받을 때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한 두 증인은 누구일까? 본문은 두 증인이 이 땅에서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밝혔다. 두 감람나무와 촛대는 구약 성경 스가랴 4장에 나오는 장면이다. 스가랴가 두 감람나무의 뜻을 묻자 천사는“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라고 알려준다. 두 증인은 사람들이 아님이 분명하다. 1260년의 긴 기간 동안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1260일을 1260년 동안 성도들이 박해를 당한 기간이라고 생각한다면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한 두 증인은 사람일 리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1260년을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굵은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슬픔과 회개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1260년의 박해 기간 동안 성도들의 고난을 슬퍼하며 세상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회개를 호소해 온 어떤 것일 것이다. 두 증인은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했는데 감람나무와 촛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둘 다 불을 밝히는 것이다. 감람나무는 불을 밝히는 기름을 대주는 원천이 되고 촛대는 그 기름으로 불을 밝힌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1260년의 암흑 기간 동안에 감람나무와 촛대처럼 계속해서 불을 밝히는 기름을 대주는 동시에 또 불을 밝혀 빛을 비추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어두움을 밝혀주는 등이 되고 빛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이“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 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성경은 어두운 중세의 박해시절 그 어두움을 비추는 등이요 빛이었던 것이다.

두 증인이라고 한 것이 신구약 성경을 잘 상징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노래했으며 예수께서는“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요 5:39)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두 증인은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성경 말씀, 즉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이라고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다.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 중세의 암흑 시대 동안 성경 말씀은 그들과 함께 슬퍼했으며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증인이었으며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 다음 절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4. 두 증인을 해하려 하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또 그들에게는 어떤 권세가 있었는가?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계 11:5~6).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한다 는 것과“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한다는 표현은 엘리야의 기사들을 연상시킨다.

엘리야가 기도한즉 이스라엘에 삼 년 반 동안이나 비가오지 않았으며(약 5:17), 엘리야를 죽이려 하던 군사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 그들을 소멸하였다(왕하 1:10). 물이 변하여 피가 되게 한다는 것은 모세가 나일강물이 피가 되게 했던 애굽의 재앙을 생각나게 한다. 실제로 모세와 엘리야는 증인으로서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말씀을 나눈 일도 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모세나 엘리야를 감람나무나 촛대로 부른 일은 없다. 또 그들은 사람이기 때문에 1260년의 긴 기간 동안 증인이 될 수도 없었다. 비가 오지 않거나 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이 임한 것은 그들이 모세나 엘리야 같은“사람”을 거절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전하는“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두 증인은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믿음의 조상들은 구약의 증인에 포함되며 신약의 모든 성도들은 신약의 증인들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신구약 성경이 해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재앙을 내린 일 이 있었는가? 요한계시록 22장 18절은“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할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 여 호와는 그를 거절하는 자들에게는“소멸하는 불이시”(신 4:24)다.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해하려 하는 시도는 실패하였고 재앙을 가져왔다. 오늘날 우리도 하

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불순종하면 재앙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편리한 대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5. 두 증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계 11:7~10). 

하나님의 말씀이 1260년의 증거를 마칠때 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 즉 사단의 세력이 성경을 핍박하여 죽은 것처럼 만들 것이다. 성경이 그렇게 박해를 당한 장소를 큰 성이라 했다. 그것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반대되는 개념이며 바벨론 성이다(계 18:2).
그 당시에 실제적인 바벨론이나 베벨론으로 불리던 로마는 이미 없었으므로 큰 성은 바벨론처럼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한 나라 나 집단을 의미할 것이다.

이곳은 또한 영적인 소돔 혹은 애굽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소돔은 타락의 온상을 대표하는 이름이며 애굽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부인하는 무신론을 대 표한다. 이런 곳이야말로 예수께서 영적으로 못 박히신 곳이다.

그렇다면 1260년의 박해 시대가 1798년에 끝나니, 그 기간이 끝나갈 무렵에 성경에 나올 만큼 대대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성경을 핍박한 세 력이 역사상에 있었는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할 만큼 교회와 신앙을 미워하고 박해한 세력과 시대가 있었는가? 분명히 있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이 부분을 역사적으로 혹은 실제의 사실로 해석하기를 주저하지만 상징적으 로만 해석할 경우 사흘 반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이 문제가 된다.

프랑스 혁명은 불과 몇년 동안 계속된 사건에 불과하지만 세계사적으로 교회사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뚜렷한 영향을 남겼다.

그러므로 성경 예언이 이 사건을 취급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프랑스 혁명은 외관상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일어난 무산 계급의 혁명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무신론 사상을 유포시키고 공산주의를 태동하게 한 기틀을 마련해 소련과 동유럽 그리고 중국의 수십억 인구를 공산주의와 무신론의 틀 속에 가두어서 하나님의 구속 사업에 큰 장애물이 되었던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는 종교 개혁을 거부하고 부패와 타락이 극도에 달했다. 성직자들은 귀족 계급이 되어 온갖 사치와 향락를 누렸으며 일반 백성들은 압제에 눌려 신음하고 하루 먹을 빵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1789년 7월 14일 분노한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혁명은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동안 왕과 교회에 억눌렸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하여 새로운 달력을 만들어 종교적인 제일들을 모두 없애버렸으며 일주일을 10일 제도로 만들어 예배일도 철폐하였다. 분노한 시민들은 교회를 더럽히고 성직자들을 모독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혁명 기간에 약 5,000명의 성직자들이 처형을 당했다.

11월 10일에는 이성의 여신을 상징하는 젊은 여인이 선택되어 노틀담 사원에서 경배를 받았다. 프랑스 혁명 의회는 1793년 11월 26일 성경과 종교 행사 금지령을 공식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였다는 예언이 슬프게도 성취되었다.

그러나 주일 제도가 철폐되고 성경 읽는 것이 금지되며 하나님 대신 이성의 여신이 받들어지자 프랑스는 최악의 무질서와 혼란에 빠져 들어갔다. 범 죄는 증가하고 국민들의 건강은 땅에 떨어졌고 사회는 공포 분위기에 사로잡혔다. 할 수 없이 프랑스는 삼 년 반 후인 1797년 7월 17일 성경 및 종교행사 금지령을 폐지하였다.

 

6. 삼일 반이 지난 후 어떤 기적이 일어났는가?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계 11:11~12).

프랑스 혁명 정부는 성경을 금지한 후에 급속도로 사회가 혼란에 빠 지자 할 수 없이 삼 년 반 만에 그 조치를 철회하였다. 그리고 죽은 것처럼 보였던 두 증인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1798년 2월 15일 프랑스 군인들이 로마의 시스티네(Sistine Chapel) 성당에 난입하여 교황을 유배 보내고 교황이 그곳에서 죽자 538년부터 1260년 동안이나 계속되던 교황의 세력은 드디어 약화되고 성경은 생기를 얻은 것처럼 보급되고 읽혀지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제지업과 인쇄술이 발달하여 성경을 비싸지 않게 출판하게 되었고 1804년에 영국성서공회, 1816년에는 미국 성서공회가 설립되어 성경을 대량으로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전 세계에 파견되었다. 실로 19세기는 위대한 선교의 시대였다.

성경은 오늘날도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이다. 신구약 성경은 매년 수백 개의 언어로 출판되며 쪽 복음 성경은 1,0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보급되고 있다. 대한성서공회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성서공회는 우리나라에서 2005년 1년 동안에 170만 권의 성경을 발행하였고 1,678,259부의 성경을 77개 언어로 제작하여 85개국에 보내고 있다. 실로 엄청난 성경의 부활이다.

 

7. 두 증인을 죽이려했던 곳과 사람들은 어떤 피해를 당했는가?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계 11:13).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에게서 직접 생기를 얻어 부활했지만 성경을 박해한 프랑스는 커다란 영적 지진을 경험하였다. 그들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주를 잃고 피폐해졌으며 엄청난 무너짐을 경험하였다.

성 십분의 일이란 유럽 열(十) 나라 중의 하나에 해당하는 프랑스를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죽은 사람이 칠 천이라는 것은 아마도 혁명 기간 동안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상징적 수라고 생각된다.

이런 격변을 겪고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님과 말씀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벌어지는 참담한 결과들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하나 님을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8. 세 번째 화, 즉 일곱째 나팔을 불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계 11:14~18).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셋째 화가 시작되 기 전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나서 이 세상이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과 그리스도께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실 것을 찬송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셋째 화가 이 세상 역사의 끝임을 알게 된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 앞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의 찬양이 시작된다.

그들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최고의 존경을 드린다. 하나님은“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하나님,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는 분”이시다. 늘 함께 나왔던“장차 오실 이”라는 구절이 여기에는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 일곱째 나팔은 분명히 마지막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은 또한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때와 마지막 심판의 때에 있을 일 을 요약하여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이방들이 분노할 것이다. 복음을 거절하며 살아온 그들은 그들에게 내리는 심판과 재앙이 성도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그들을 핍박하며 죽이려 할 것이다. 전세계적인 분노와 핍박이 성도들에게 쏟아질 것이다.

그 때 드디어 주의 분노가 이 땅에 내릴 것이다. 오래 참으셨던 은혜의 시기는 끝날 것이다. 이 땅에 내릴 주의 분노는 일곱 재앙 가운데 잘 나타나 있다(계15~16장).  그 때는 죽은 자들도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심판의 때를 가 리키는 말씀이다. 재림하신 후 천 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 그리스도와 성도들은 다시 이 땅에 내려온다(계 21장). 그 때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 다부활하여 마지막 심판을 받을 것이다(계 20:7~15).

그 때에 그의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실 것이다. 이제 아름답게 재창조된 이 땅과 새 예루살렘 성이 그들의 거처가 된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온 그들에게는 무궁한 기쁨과 영생이 상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이 때는 또한“땅을 망 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 이다. 악인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저항을 시도하지만 마침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그들을 소멸하게 된다. 마침내 모든 죄악의 역사는 완전히 끝난다. 우주에는 다시 사랑과 기쁨만이 가득 차게 된다.

 

9. 하늘 성전의 모습은 어떠하였는가?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 11:19).

모든 구원의 역사가 마치는 이 때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며 언약궤가 보이고 있다.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며 살아왔다. 심지어 자칭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십계명을 등한히 여겼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넷째 계명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 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거룩한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꾸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하나의 계명을 어기면 모두 범한 것과 같다는 것(약 2:10)을 그들은 애써 외면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그 모든 불순종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은혜의 시기는 끝나고 이 세상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은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은 이 세상에 임할 엄숙한 재앙과 심판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감사하는 것은 성전이나 계명이나 심지어는 심판까지도 그 근본 정신은 사랑이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명상할 문제   

오늘 우리의 태도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다. 하나님이 계신 것이 분명한 것처럼, 이 죄악 세상의 역사가 끝나고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도 확실하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아무리 박해를 당하고 거절을 당해도 언제나 승리한다. 그것은 역사가 증거한다.
그러나 그 성경 말씀을 거절하는 세력이나 개인은 마침내 구원의 길에서 떠나게 된다. 그 운명의 날, 우리가 어느 편에 서 있을 것인지 오늘 결정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우리의 생명은 언제 끝날지 모르며 세상의 마지막도 “생각지 않은 때”(마 24:44)에 청천벽력처럼 우리에게 임할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공부하신 내용에 대한 문제를 풀어 보시겠습니까?

1. 마흔 두달을 짓밟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2. 두 증인은 누구인가?
3. 무저갱에서 올라와 두 증인을 죽인 세력은 무엇인가?
4. 두 증인의 시체를 사흘 반 동안 목도 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5. 두 증인을 죽이려 했던 곳과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