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내 몸처럼

어느 날 예수님께서 다른 날처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계실 때에 유대의 한 율법사(성경을 잘 아는 학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밀어 제치며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용기 있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누가복음 10장 25절).

율법사는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런 질문을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벌써 그의 모든 계획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에 도리어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성경을 잘 아는 이 율법학자는 자신 있게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누가복음 10장 2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율법사는 뻔히 알고 있던 사실을 일부러 질문해서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한 것인데, 도리어 자신의 질문에 자신이 대답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옳게 살아왔음을 나타내려는 듯한 표정으로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누가복음 10장 29절).

자기 몸같이 사랑해야 될 이웃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에 답하시기 위하여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한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에 산속에서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에게 달려들어 돈과 물건, 그리고 옷까지 다 빼앗은 다음 거의 죽게 될 정도로 때렸습니다.

그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는데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마침 그 때 저쪽에서 제사장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살려 달라”고 외쳤어요. 그러나 그 소리는 겨우 모기 소리만큼 들릴 뿐이었지요. 제사장은 그 옆을 지나다가 땅 위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유대인을 보자 귀찮다는 듯 주위를 살피며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잠시 후 또 한 사람이 올라왔는데, 그는 레위인이었습니다. 레위인도 성전에서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던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그 사람도 쓰러져 있는 유대인을 보자 구할 생각은커녕 “이 사람이 강도를 만났네. 여기서 우물쭈물 하다간 나도 큰일 나겠지!”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나를 돌보아 줄 사람이 없으니 이제 이 산속에서 꼼짝없이 죽게 생겼구나.’
유대인은 너무나 낙심하였습니다. 자기와 같은 유대인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으니까요. 아! 어떻게 하면 좋지요?
그런데 저쪽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힘을 내었어요. 그러나 가까이 온 사람을 본 유대인은 더욱 실망했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유대인들이 늘 개처럼 취급하며 무시해 오던 사마리아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이 가까이와도 도움을 청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마리아인은 다가와서 쓰러져 있는 유대인을 보자 깜짝 놀라며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자기가 타고 왔던 나귀에 태워 여관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여관에 도착하자 그는 유대인을 안아서 제일 좋은 방에 눕히고 밤새도록 간호하여 주었습니다.
이튿날 그 사람은 사업을 위하여 떠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걱정이 된 나머지 주인을 불러 유대인을 부탁했답니다.
“이 사람을 돌보아 주시오. 돈이 부족하면 내가 장사하고 돌아올 때 갚아주리다.”
그는 주인에게 돈을 주며 여러 번 당부했습니다(누가복음 10장 30~35절 참조).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요?

예수님께서 이야기를 마치시고 율법사에게 물으셨어요.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누가복음 10장 36, 37절).
율법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어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거룩한 척하면서도 늘 사마리아 사람들을 무시하고 욕하는 유대인들의 위선적인 행동과, 선하고 따뜻하게 살아가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모습이 이 이야기 속에 잘 나타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와 유대는 어느 나라보다 가까이 이웃해 있는 나라이면서도 아주 사이가 나빠서 서로 미워하고 있었거든요.
그러한 원수에게 도움의 손길을 편 사람!
그가 바로 따뜻한 이웃인 것입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이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까 ?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체한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기꺼이 도와준다.

 

예수님처럼

어린이 여러분!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 생각해 봅시다.
또 그들에게 각각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살펴보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 보도록 합시다.
사랑은 말로 하기는 쉬워도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있으면 하늘에 있을 내 자리는 다른 친구에게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불쌍하고 병든 사람들과 불구자들을 고쳐주고 돌봐주며 그들과 친구가 되셨습니다.
우리들도 그처럼 친절하셨던 예수님을 따라서 늘 그분과 같은 생활을 해야겠어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점점 그런 사람으로 변해 가는 것을 보실 때 매우 기뻐하시거든요.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들이 괴로워하거나 실망할 때면 예수님께서는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신답니다. 우리의 손을 주님께 펼치고 사랑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겠어요.
어떻게 하면 어려운 이웃을 도와줄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을 한번 기록해 보세요.

 

사랑은 실천할수록 커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치시기 위하여 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면서 세 종들에게 자기 재산을 맡겼습니다. 종들은 맡은 재산을 잘 관리할 책임과 이용할 권리를 받게 되었지요.
주인은 종들의 특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각각 능력에 맞게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나머지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종들은 주인이 없는 사이에 제각기 그 돈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기도 하고, 그냥 보관해 두기도 하였습니다.
오랜 날들이 지난 후에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곧 종들을 불러서 맡겼던 재산에 대하여 계산하였답니다. 먼저 다섯 달란트를 주었던 사람에게 확인해 보았습니다.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정말 그 종은 열 달란트를 주인 앞에 선뜻 내놓았어요.
주인은 매우 기뻐하면서 그를 칭찬했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두 달란트를 갖고 있던 사람도 앞으로 나아와 네 달란트를 내어 놓았습니다.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것을 본 주인이 역시 기뻐하며 먼저 사람과 똑같이 칭찬해 주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한 달란트를 맡았던 사람이 머리를 조아리며 앞으로 나아와 말했지요.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인지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보고를 들은 주인이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마태복음 25장 14~30절 참조).

한 달란트 맡았던 사람은 맡은 돈을 잘 활용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웠기 때문에 주인에게 벌을 받아 아름답고 행복한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답니다.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됩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먼 나라로 여행 간 주인은 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주인이 돌아온 것처럼 주님께서도 다시 세상에 돌아오실 거예요. 종들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비유해서 한 말인데,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모두 예수님의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전 세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이지요.
우리들은 각자의 지식, 사랑, 모든 것을 바쳐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있는 재능들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니까요. 주인이 달란트를 나누어 주고 간 것은 이 재능을 의미한답니다.
주인이 달란트를 나누어 줄 때 각각 종의 특성에 맞게 나누어 준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재능은 서로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말로, 또 어떤 사람은 글로, 노래로, 그림으로, 운동으로, 만들기로, 선행으로 그 외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섯 달란트를 사용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한 달란트 밖에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은 한 달란트의 재능을 주셨지요.
그분은 양보다도 각 사람이 얼마만큼의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잘 아셨기 때문에 결코 무리한 봉사를 원치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있을 만큼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두 달란트를 받아서 두 달란트를 더 벌었을 때와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을 때의 칭찬과 보상은 똑같은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각자가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누가복음 16장 10절).

우리는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을 즐겨 하는 어린이들이 장래에 큰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답니다.

사람은 날마다 하고 있는 작은 일들로 일생을 만들어 갑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그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인지 못 받을 것인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머지않아 우리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 비유 가운데서 그 주인이 맡겼던 돈을 엄중하게 조사하고 계산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받은 재능을 어떻게  활용하였는지 조사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모두 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도록 해야겠지요?

착하고 친절한 행동, 그리고 언제나 명랑하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기를 좋아하며, 병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기도해 주는 사람이 됩시다.

 

예수님께 드리는 기도

사랑하는 예수님 !
저에게 친절한 행동과 감사하는 마음과 남을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예수님처럼 항상 남을 도와주고, 기도하면서 살겠습니다.
예수님! 사랑해요.
우리 곁에 계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공부하신 내용에 대한 문제를 풀어 보시겠습니까?

1.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어떻게 하기를 원하셨습니까?
3. 강도를 만나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도와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5. 예수님께서는 이웃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