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어느 지방에서 두 부족이 전쟁을 했다. 한 부족이 패배하고 추장은 포로로 잡혀와서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마침 그 마을에 와 있던 선교사가 이 일을 알고 추장을 살려주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 다. 추장은 쇠사슬로 든든한 기둥에 묶여 있었다. 쇠사슬을 끊어내지 않는 한 탈옥은 불가능했다.

어느 날 선교사는 두꺼운 성경책 한 권을 가지고 추장을 면회했다. 그리고 절망에 빠져 있는 추장에게 이 성경책을 읽으면 살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하면서 꼭 읽어보기를 권했다. 그러나 자포자기한 추장은 성경을 읽어 볼 생각이 없었다. 선교사는 매일 찾아와 성경을 읽었느냐고 안타깝게 물었고 추장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처형이 가까운 어느 날, 상심한 추장은 무슨 위로라도 받을까하여 성경을 폈다가 깜짝 놀랐다. 성경 갈피 갈피마다 가늘고 날카로운 줄 톱들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그때서야 추장은 선교사의 말 뜻을 알아차리고 그 줄 톱으로 몸을 결박한 쇠사슬을 자르고 무사히 탈옥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하고 악의 감옥에서 해방시킨다.

 


* 제9장을 시작하며…  넷쩨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해 달 별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어두워 졌다. 그리고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외치기를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 소리를 인함이로다” 하였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의 기별과 대조적인 평행절을 이루고 있다.


 

  처음 네 나팔도 두려운 것이었는데 후의 세 나팔은‘화(禍)’ 라고 하였으니 얼마나 두려운 일이 일어날 것인가? 요한계시록 9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다섯째 나팔 부분(계 9:1~11)과 여섯째 나팔부분(계 9:13~21)이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 무저갱을 열고 거기에서 나온 연기가 해와 공기를 어둡게 하며 연기 가운데서 나온 황충이 전갈과 같은 권세 로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 여섯째 나팔을 불자,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가 풀려나고 입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을 뿜어내는 이만 만의 말탄 자들이 나타나는데 사람 삼분의 일이 그것 때문에 죽임을 당하였다. 일곱째 나팔은 세상의 마지막이다(계 11:15~19).

이러한 상징들을 도대체 어떤 원칙에 의하여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다섯째 나팔의 황충과 여섯째 나팔의 네 천사는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 까? 왜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해치는 것일까?

과거주의 해석가들은 이 모든 사건들이 다 과거, 즉 로마 시대에 일어난 일들이라고 주장한다. 미래주의 학자들은 이 사건들은 다 미래에 일어날 일로써 재림 직전에 사단이 일으킬 활동들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상주의 학자들은 9장에 나오는 상징들을 구체적 역사적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메뚜기나 황충을 그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만 해석하고 싶어한다. 다섯째 나팔에서의 고통도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황충의 모양에 대한 9장의 자세한 묘사는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  상당수의 역사주의 주석가들은 다섯째 나팔과 여섯째 나팔의 사건들을 이슬람 세력의 등장과 발전으로 생각한다. 나팔이 교회사와 세속사를 아우르며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하는 것이고, 서기 600년 대에 발생하여 1,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독교와 세상의 종교, 문화 그리고 세상 권력의 세력 판도에 끼친 이슬람의 강력한 영향을 생각하면, 이슬람 세력을 성경의 예언이 취급하지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또한 메뚜기가 성한 지역이 이슬람 종교가 극성한 지역과 일치한다는 학설 도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학자들 중에는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 (Martin Luther)를 비롯하여 과학자 아이삭 뉴톤(Issac Newton) 등, 여러 중요 학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계 9:1).

셋째 나팔(계 8:10)에서 우리는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만일 우리가 그 별을 하늘에서 떨어진 사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면 9장 1절의“땅에 떨어진 별”도 역시 사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것은 반역을 일으켜 하늘에서 추방 당한 사단의 모습을 표상한 것으로 보인다.

무저갱이란 헤아릴 수 없이 깊은 곳을 말하는 것으로 성경에는 음부라고표현되었으며 창세기 1장 1절에는 “혼돈하고 공허” 하여 깊이를 모르는 어두움을 말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또한 신약 성경에서 무저갱은 타락한 천사들이 갇혀 있는 어두운 구덩이(벧후 2:4)를 가리키고 사단이 일천 년 동안 갇혀 있어야 할 감옥을 표상하기도 하였다(계 20:3).

열쇠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열고 닫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이 별은 많은 사람들을 죽음(무저갱)으로 내 몬 장본인이어야 할 것이다. 열쇠를 누구에게서“받았다”는 것은 이 인물이 무저갱의 주인이 아니라 잠시 권한을 허락받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2. 무저갱을 열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계 9:2~4).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 무저갱을 열자 큰 풀무에서 나오는 연기 같은 것이 올라와서 해와 공기가 오염되고 어두워졌다. 그리고 연기 가운데서 황충이 나와 전갈처럼 해하는 권세를 받았다.

무저갱에서 나오는 연기 같은 것이 무엇일까? 연기는 일반적으로 재앙이나 심판을 나타내며 또한 어떤 것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의 표상이다.

연기에서 나온 황충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황충은 메뚜기과에 속한 곤충으로 떼를 지어 이동하며 한번 날기 시작하면 온 하늘을 덮고 황충이 내려앉는 곳은 푸른 농작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황폐해진다. 황충은 구 약 성경에서 땅을 황폐케하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난다(대하 6:28; 시 78:46; 105:34; 시 34:3; 욜 1:4).

요엘 1:4에서“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고 한 것을 보아 황충의 재앙은 가장 파괴적이고 무서운 것임을 알 수 있다.  황충은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다.

전갈(scorpion)은 온도가 높은 지방의 돌 사이에 서식하는 작은 곤충으로 꼬리에 강한 독침을 가지고 있다. 전갈에게 쏘이면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며 때로는 생명까지도 위험하게 된다. 황충에게“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하였는데 원래 황충은 푸른 풀이나 수목을 해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해하지 말고 오직 인맞지 않은 사람들만 해하라고 한 것을 봐서 이곳에 나오는 황충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어떤 세력임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푸른 풀이나 수목은 청청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나타낸다. 이슬람의 구약 성경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들이 대항하지 않는 한 유대교와 기독교를 크게 박해하지 않았다.

현대 기독교를 향한 이슬람의 증오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그로 인한 피의 복수 때문에 주로 생겨난 것이다.

 

3. 황충은 무슨 일을 하였으며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였는가?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계 9:5~6).

황충의 세력도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악의 세력은 벌써 지상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진멸시켰을 것이다. 그들은 다섯 달 동안만 괴롭힐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최근의 학자들은 나팔들을 구체적 역사적 사건에 적용시키는 것을 피하고 단지 영적인 어두움과 세속주의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면 다섯 달같은 구체적인 기간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문제가 된다. 단순히 세속주의를 묘사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런 놀라운 형상들을 총동원하셨을까?

어떤 학자들은 메뚜기의 활동 기간이 다섯 달이기 때문에 다섯 달 동안 괴롭힌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다섯 달은 실제의 다섯 달이 아니라 예언적인 기간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1일 1년 원칙을 적용해서 다섯 달을 150년으로 보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본(Edward Gibbon)같은 역사주의 해석자들은 이 다섯 달을 황충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세력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여 비잔틴 제국을 괴롭힌 A.D. 1299년부터 1449년까지로 본다.

1299년 7월 27일 오토만 터어키의 건설자 오토만은 동로마의 니코메디아를 공격하였고 그로부터 150년 동안, 즉 1449년 7월 27일까지 그리스도교인 국가들을 괴롭혔던 것이다. 1838년 장로교 목사인 조시아 리치(Josiah Litch)는 1449년을 비잔틴 세력이 실제적으로 몰락한 연대로 보았다. 오토만 터키는 이 기간 동안 13만명의 배교자를 처형하고 500만 명을 살상하였다고 한다. 마치 전갈이 사람을 쏘는 것처럼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 것이다.

 

4. 황충들의 모양은 어떠하였는가?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는 사자의 이 같으며 또 철흉갑 같은 흉갑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계 9:7~11).

만일 우리가 연기 가운데서 나온 황충을 이슬람 세력으로 해석한다면 이 성경절들은 이슬람 세력을 설명하는 상징들이다.

이슬람 전사들은 기병이 중심이었다.수천 명의 기병이 먼지를 일으키며 돌진하는 모습은 마치 황충이 하늘을 덮고 농작물에 떨어지는 것과 비슷했다.

그들은 노란색 터번을 머리에 둘러 마치 금면류관을 쓴 것처럼 보였으며 그들의 장발은 여인의 머리털같이 보였다. 이가 사자의 이 같다는 것은 이슬람 세력이 무엇이든 씹어 삼키는 사자의 이처럼 무서운 파괴력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흉갑은 가슴에 차는 방어용 무기다. 이것은 이슬람 세력이 강한 방어력을 가졌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 날개들의 소리는 전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병거와 많은 말들의 소리 같다고 한 것은 신속하고도 막강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로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다고 한 것은, 전술한 대로 이슬람 세력이 150년 동안 그리스도교 국가들을 괴롭힌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5. 그들의 임금의 이름은 무엇인가?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계 9:11). 

지금까지 황충들의 무서운 활동들을 보면서 그것들의 정체에 대하여 의문을 가졌었는데 드디어 그들의 임금의 이름이 나온다. 이 이름을 해석할 수 있다면 그들의 정체도 밝혀질 것이다. 황충들이 무저갱에서 나왔는데 그들을 지휘하는 임금이 있었다. 그는 무저갱의 사자(使者)였다. 무저갱의 사자는 과연 누구인가? 무저갱은‘측량할 수 없는’혹은‘바닥이 없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헬라어 아부소스(abussos)를 번역한 것이다. 무저갱의 임금이 있고 그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나오는데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abaddon)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apolluon)이었다. 히브리어로 아바돈은‘파괴’와‘파멸’을 의미한다. 헬라 음으로는 아볼루온이라 하였는데 이것도‘파괴자’란 뜻이다. 요한계시록 9장 1절에 보면 하늘에서 떨어진 별 즉 사단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무저갱의 사자이며 임금인 파괴자 아바돈은 사단 자신임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해를 어둡게 하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황충의 활동 뒤에는 무저갱의 임금 사단이 있음을 알게 된다.

5달 동안 황충이 활동함

150년(5달) 동안 사람들을 괴롭힌 황충과 391년(계 9:15, 년월일시)이되면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일 말을 탄 자들은 누구인가? 최근의 학자들은 이것을 단순히 영적인 어두움과 세속주의의 공격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 은 예언을 구체적 역사적 사실로 적용시키는 부담을 덜어주기는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예언성을 약화시키는 단점이 있다. 상당수의 주석가들은 다섯째 나팔과 여섯째 나팔을 이슬람 세력의 발생과 발전으로 해석하고 있다. A.D. 600년경에 발생하여 1,300년 간 이슬람이 하나님의 교회와 세계사에 끼친 위협과 영향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적대하는 세력에 대한 심판을 묘사하고 있는 나팔에서 그들을 취급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아라비아는 사막 때문에 무저갱으로 불리웠고 여기서 이슬람이 생겨 마치 연기처럼 퍼져나갔다.

아랍 연합군은 651년까지 마치 황충처럼 땅을 덮고 시리아, 이라크, 메소포타미아, 이란, 이집트를 정복하였다. 674년 이슬람은 동로마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 수륙양면으로 대대적 공격을 가했다. 그리고 823년까지 동로마를 괴롭혔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이슬람은 여러 나라로 분열하여 서로 싸웠으며 A.D. 1000년경에는 아시아 쪽에서 셀주크 투르크(Seljuk Turk)족이 강성하여 서쪽으로 넘어오면서 바그다드가 점령을 당했다. 그들이 소아시아에 터키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그 명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들은 정권을 잡고 왕을 슐탄(Sultan)이라고 불렀다. 십자군이 공격한 것은 이 셀주크 투르크족이었다. 셀주크 투르크가 약해지자 중앙아시아의 오토만 투르크(Othoman Turk)가 강성해져 1299년에 나라를 세웠다. 말들의 입에서 나오는 연기와 이만 만이란 숫자는 오토만 투르크족의 기병들이 사용한 화약총과 그들의 무수한 숫자를 상징하는데 적절한 표현이었다.   이슬람 세력은 중세의 암흑시대 동안 타락한 교회에는 일종의 심판이었으며 종교 개혁자들에게는 오히려 지원 세력이 되었다. 1299년 7월 27일 동로마의 한 지방인 니코메디아를 침공한 오토만 투르크는 1449년까지 150년(5달)동안 13만 명의 배교자를 처형했으며 500만 명의 인명을 살상하였다. 그러나 성경에 풀이나 각종 수목으로 상징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았다. 오토만 투르크는 다섯 달 기간이 끝나는 1449년 7월 27일부터 년, 월, 일, 시 즉 391년 동안 침략으로 많은 사람을 괴롭게 하고 391년이 끝나는 1840년 8월 11일에 멸망하여‘동방의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6. 여섯째 나팔(둘째 화)을 불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계 9:12~15).

첫째 화는 다섯째 나팔로써 이미 우리가 연구한 바와 같이 황충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세력이 비잔틴 제국을 괴롭힌 1299년부터 1449년까지의 사건으로 본다. 두 번째 화인 여섯째 나팔은 그 이후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둘째 화는 하늘 성소에서 나는 한 음성으로 시작된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나님 앞 금

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유브라데 강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주라고 말하였다.

성경에서 유브라데 강은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의 대적들 사이에 경계가 되는 강으로 상징적이며 종말적인 의미가 있는 강이다.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도 유브라데 강이 마르면서 시작된다. 여기서 결박된 네 천사는 하늘의 천사가 아니다. 이 천사들은 요한계시록 7장 1절의 바람을 붙잡고 있는 네 천사와는 다르다. 언제나 하나님께 순종하는 천사들이 결박되어 있을 리는 없다. 그들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단의 세력들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한 것은 아무리 악한 세력이라도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다는 사실이다. 사단은 당장이라도 지구를 멸망시키고 싶고 우리를 파멸시키고 싶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발생하는 악과 재앙은 하나님이 허락하셨으니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가? 그렇 지 않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않으셨다면 이 세상은 사단의 저주와 죄악의 결과로 벌써 멸망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재앙들과 불행들을 하나님께서 막으시고 최소한의 것들이 죄악의 결과로 일어난다고 보아야 한다. 가령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해서 홍수와 재난이 일어난다든지 저수지 관리를 잘못해서 저수지가 무너진다든지, 인간들의 욕망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다든지 하는 것은 하나님께 책임을 돌릴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죄악 세상의 역사가 빨리 끝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결박된 네 천사가 놓이자 이 땅에는 무서운 참극이 일어났다. 연 (年), 월(月), 일(日), 시(時) 동안에 사람 삼분의 일이 죽은 것이다. 삼분의 일이란 첫째 나팔부터 넷째 나팔까지에서 우리가 해석한 대로 하나님을 적대하는 세력을 말하는 불길한 수이다. 연월일시가 예언적인 숫자이므로 일 일을 일 년으로 계산하는 예언 계산법에 의하면 일 년은 360일이고 한 달은 30일이며 하루는 일 년이고 1시간은 15일이 되어 총합계 391년 15일이 된다.
많은 학자들은 다섯째 나팔을 이슬람 세력인 오토만 터어키가 비잔틴 제국을 괴롭힌 1299년부터 1449년까지로 본다. 1299년 7월 27일 오토만 터어키의 건설자 오토만은 동로마의 니코메디아를 공격하였고 그로부터 150년 동안, 1449년 7월 27일까지 그리스도교인 국가들을 괴롭혔던 것이다.

여섯째 나팔은 순서상으로 그 이후에 일어난 사건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섯째 나팔의 시작은 1449년 7월 27일이 된다. 그리고 거기에 391년 15일을 더하자 1840년 8월 11일이 나왔다. 19세기의 성경학자이며 장로교의 목사인 조시아 리치(Josiah Litch)는 여섯째 나팔을 연구한 후에 1840년 8월 11일에 오토만 터어키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실제로 오토만 터어키는 1840년 여름에 그 세력을 상실했다. 만일 이 연대들이 정확한 것이라면 놀라운 예언의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오토만 터어키는 391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게 했다. 터어키의 여러 도시에서 시체로 성벽을 쌓았으며 그리스도인들을 추방하였던 것이다.

 

7. 그들의 모습은 어떠하였으며 그들의 수는 얼마였는가?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이 세 재앙 곧 저희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계 9:16~19).

우리가 여섯째 나팔을 오토만 터어키의 활동으로 본다면 위에 언급된 마병대의 모습은 오토만 터어키 기병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이슬람의 기병대들은 이만 만(2억)이나 되는 것처럼 들판을 새까맣게 덮고 쳐들어 왔으며 그들이 가진 신식 무기인 총과 대포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내뿜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살육을 당하였다.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 에 있고, 그“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한다는 말은 해석하기 난해하다.

혹자는 오토만 터어키의 군기에 말의 꼬리가 그려있는 것을 말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사용한 대포의 모습을 묘사한 것일 가능성이 많다. 대포 를 본 일이 없는 요한의 눈에는 말들이 끌고 다니는 대포의 포신이 꼬리처럼 보였을 것이며 뱀같이 길게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꼬리(포신)의 머리에서 불덩이가 나오는 것을 보고 머리로 해한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8. 살아남은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무슨 일을 하였는가?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계 9:20~21).

이슬람 세력의 잔인한 살육을 피한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지 않고 오히려 우상 숭배에 빠졌으며 그들의 악행을 회개하지 아니하였다.

 


 

명상할 문제

외로운 밧모 섬에서 하늘의 계시를 보는 요한에게 그 계시의 내용들은 기쁘고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저갱에서 올라와서 해를 가리는 황충처럼 두렵고 답답한 것이었다. 선과 악의 대쟁투는 그만큼 치열하고 무서운 것이었다. 그러나 요한에게는 한 가지 확신이 있었다. 아무리 무서운 사건들이 이 세상에 일어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으며 마침내는 그 모든 것이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그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 속에도 이해할 수 없는 환난과 고통이 밀려올 때가 많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악과 억울한 사정들을 보고 계시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계시는 우리의 아버지시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죽는 것까지도 하나님께 맡겨버리는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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