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조각 다윗상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어느 날 미켈란젤로는 한 쪽이 떨어져 나가고 금이 간 대리석 덩이를 발견한다. 대리석 상인이 쓸모가 없다고 버리다시피한 물건이었다. 미켈란젤로는 그 대리석을 헐값에 샀다. 그리고 깨진 것과 금이 간 것을 잘 이용하여 최고의 명작인 다윗상을 조각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도 때로는 거친 풍파가 밀려올 때가 있고 시련이 많으며 깨져버리고 금이 가서 절망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우리는 그 모든 흠에도 불구하고 불멸의 명작이 된다. 이것이 신앙의 위대함이요 아름다움이다.
일곱 교회들은 고난이 많고 핍박이 끝이 없었다. 그러나 일곱 촛대 사이를 다니시며 하나하나 세심하게 우리를 돌보시는 그리스도가 계신 이상 아무리 무서운 역사가 진행되어도 우리는 두렵지 않게 된다.

 


* 요한계시록 2, 3장에는일곱 교회의 이름을 들어 각각 그 교회에 부 친 편지가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 있어서 7은 완전을 의미하는 숫자이다. 우리가 이 편지를 자세히 검토해 보면 그 하나하나가 당시 소아시아 에 산재하고 있던 교회에 대해서 가장 적절한 칭찬이요, 질책이요 또한 경고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곱 개의 편지가 단순히 그 당시의 이들 일곱 교회에게만 주어진 것이라고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편지의 영감적이고도 예언적인 내용들을 간과하는 것이다.
일곱 개의 편지들을 자세히 보면 각각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1) 편지서의 머리말에 수신자를 명시하고 그 교회를 향하신 각각 다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남, 2) 교회의 믿음에 대한 칭찬, 3) 교회의 잘못에 대한 책망, 4) 열렬하고 동정과 권위에 찬 권면, 5)  교회에 필요한 경고, 6) 사명의 주의를 촉구하는 가장 엄숙한 권면, 7) 승리한 자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축복의 약속 등이다. 일곱 교회 중 에베소와 서머나는 큰 항구 도시였다. 두아디라,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는 각각의 지역에서 공업과 상업의 중심지였으며 크게 번성하는 도시였다.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던 사데와 부요한 버가모 왕국의 수도였던 버가모는 정치적인 중심지였다. 일곱 교회는 지리적으로도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인접한 교회 중에서는 80km가 넘는 곳이 없었다. 일곱 도시를 연결하는 편리한 도로가 있었으므로 일곱 교회를 여행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곱 교회에 보내진 기별은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어 수신자와 발신자가 나타난다. 신약 성경 다른 서신과의 차이점은 발신자이신 그리스도가 수신자의 영적 상태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다음에 칭찬받을 만한 수신자의 영적 상태가 묘사되어 있고 책망과 견책도 그 뒤를 따른다. 그 다음 회개하라는 호소와 아울러 이기는 자에 대한 보상이 약속되어 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는 물론 요한 당시 소아시아에 있던 실제 교회들이고 편지도 실제 그 교회들에게 보내져 회람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일곱 교회에 보낸 각각의 권면 들은 어느 한 교회에만 해당되는 기별이 아니고 일곱 교회 전체에 해당되는 권면이다.

또한 요한계시록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요한에게 미리 보여주신 책이기 때문에 일곱 교회들은 그 시대뿐만이 아니라 요한의 시대부터 세상 끝까지에 일어날 각 시대 교회들의 특성을 예언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구약 성경 다니엘 2장의 신상이 느부갓네살의 때로부터 세상 끝날까지의 세상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이 다니엘서 자체의 해석이기 때문이다(단 2:37~44). 이것이 또한 요한계시록 해석의 열쇠가 되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의 전반부 즉 역사적인 부분을 취급하고 있는 일곱 교회, 일곱 인, 일곱 나팔도 기록자의 시대로부터 세상끝까지의 각 시대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다.

2) 서머나 교회는 십일 동안 환난을 당하리라고 경고를 받았는데(계 2:10) 그것이 단지 열흘을 가리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십일은 예언적으로 계산하면 10년이 되는데(민 14:34; 겔 4:6) 한 교회만 10년 동안을 핍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머나 교회를 한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여 서머나 교회 시대에 있었던 10년 동안의 핍박(A.D. 303~313)으로 생각하면 문제가 풀린다. 4세기 초 교회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시작된 10년(A.D. 303~313) 동안의 박해를 당하였다. 이것은 당시의 역사가 유세비우스도 그의 교회사에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 사실이다(유세비우스 : 교회사, 엄성옥 역, 서울 도서출판 은성, 2003, 11, 408, 409). 만일 일곱 교회가 당시 소아시아의 실제 일곱 교회만을 나타낸다고 하면 왜 이 경고가 모든 교회에 나타나지 않는가? 그것은 박해가 왔던 것이 서머나 교회라는 장소가 아니라 서머나 교회 시대라는 시대에 왔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가 속히 오신다는 약속은 여섯 번째 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만 나타난다. 특별한 재림 운동의 시대를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4) 그러나 일곱 교회가 일곱 시대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해서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 외에는 우리와 상관없는 기별인 것은 아니다. 요한이 일차적으로는 이 편지들을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어 회람시켰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의 기별은 각각 오늘날 우 리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에베소 교회의 기별은 첫사랑을 버린 우리들에게“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 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권면이요,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극히 세속적인 세상에 살면서 발람의 교훈에 빠지기 쉬운 우리들에게 주시는 경고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마지막 시대에 살면서도 미지근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에 대한 경고이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에 보내는 권면과 경고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동시에 해당되는 말씀임을 깨닫고 그 모든 경고와 교훈들을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각 교회를 구분하는 시대적 연 대는 사도 시대부터 재림 시까지 일곱 단계의 구분을 위해서 필요하긴 하지만 일 년의 오차도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최 근의 학자들은 정확한 연대보다는 시대별 구분을 더 선호한다. 즉 사도시대(1세기), 박해시대(2~3세기), 세속화 시대, 타락의 시대(4~5세기), 중세시대(5~15세기), 종교개혁 시대(15~18세기), 선교시대 및 재림운동의 시대(18~19세기), 종말시대(19세기~재림)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그러나 독자의 이해와 편리를 위하여서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는 연대도 편리한 점이 있기 때문에 시대 별로 구분하여 도표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1. 에베소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계 2:1).

  일곱 교회 중 첫 번째 교회인 에 베소(Ephesus) 교회는 고대 소아시아의 유명한 도시 에베소에 세워진 교회였다. 에베소는 그 당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수리아의 안디옥과 더불어 동방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였다.

  아시아의 마지막 항구인 에베소는 국제적인 무역항이었으며 항구는 선박으로 꽉 찼고 거리는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붐비는 상업의 중심지였다.

  온 아시아에서 온 물건들이 이곳에 모였다가 유럽으로 실려 갔으며 유럽 의 물건들도 이곳으로부터 온 아시아로 팔려 나갔다. 사도 바울은 제2차 선교 여행 중에 이곳에 3년을 머물면서 교회를 세우고 온 아시아에 전도하였다(행 19:1~41; 20:31).

에베소는 현재 그 터가 폐허가 되어 유적지로 남아있다.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많은 발굴이 이루어진 곳이 에베소다. 잘 보존된 원형 극장은 24,500개의 좌석이 있었다. 두란노 서원 자리로 알려진 셀수스 도서관, 화려한 기념 건물과 광장, 대규모의 목욕탕과 수세식 화장실 등은 고대에 에베소가 얼마나 번영하던 도시였던가를 말해주고 있다. 에베소의 유적지 근방에는 현지 이름으로 셀쥬크(Seljuk)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으며 이 마을의 남쪽으로 요한의 무덤 터에 지었다는 성 요한 교회의 유적지가 남아있다. 이 교회의 남동쪽에는 유명한 아르테미스 여신의 신전 자리가 있다. 원래는 신전의 길이가 130m였으며 높이 20m의 기둥이 127개나 건물을 받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 모습은 전혀 찾을 길이 없고 기둥 하나만 남아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
  에베소라는 이름은‘바람직하다’혹은‘부러워할 만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수고와 인내에 대해 칭찬을 받지만 그 첫사랑을 버린 것에 대해 책망을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이 교회에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권고하신다(계2:1~7). 이 기별은 일차적으로는 그 당시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권면이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기별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사도시대 교회 즉 그리스도의 승천 후부터 마지막 사도인 요한이 죽은 때까지의 시대(A.D. 31~100)에 보내는 기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대의 교회는 순결하였으며 첫사랑의 열성을 가진 교회였다. 그들은 핍박과 고난을 인내하였으며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모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일곱 별”과“일곱 금촛대”는 일곱 교회를 의미하며 모든 교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시는“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는 핍박받는 충성스러운 교회와 그 지도자들을 사랑하시고 친히 돌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2. 에베소 교회는 어떤 칭찬을 받았는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2, 3).

 에베소 교회에 대한 칭 찬은 아름답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모든 일에 인내하는 교회였다.

   에베소 교인들은 또한 건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악한 자들과 거짓 교리들이 틈을 탈 수가 없었다. 그들은 또한 부지런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께 이런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에베소 교회가 대표하는 초기교회(사도시대 교회. 계 2:2~3)도 복음 전파 를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아니한 교회였다. 비록 네로(Nero)나 도미티안(Domitian) 황제를 비롯한 여러 황제들의 핍박을 받아 신자들은 때로는 생명까지 위협을 당했지만 그들은 모든 고난을 견디고 복음을 전하는데 부지런하 였다. 사도시대 교회는 또한 거짓 이단설이 교회를 공격하고 괴롭히던 시대였다. 그러나 교회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그들의 거짓을 밝혀내 교회를 굳건히 지켰다.

 

3.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무엇 때문에 책망을 받았는가?

“그러나 너를 책망 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삼년이나 눈물로 목회한 교회이다(행 20:31). 그들은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헌신하였으며 그 주위에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을 세우고 어머니 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 화려한 세속적인 상업 도시에 세워진 교회는 그 처음 사랑과 열성을 잃어버렸다. 우리들도 세월이 흐를수록 처음 하나님을 믿을 때의 순수함과 열성을 잊고 사랑이 식을 수가 있다. 타성에 젖어서 사랑을 잃어버린 신앙은 힘이 없고 생기가 없는 신앙이 되고 만다. 비록 교리에 충실하고 날카롭게 이단설을 가려낼 수 있다하더라도 사랑을 잃어버린 신앙은 죽어가는 신앙이다.

  첫사랑의 교회 에베소 시대(A.D. 31~100)도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했다. 어느 시대보다도 열성과 헌신이 있었다. 핍박과 고난으로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지만 그들의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그러나 사도들이 하나 둘씩 그들을 떠나고 예수의 재림도 기대한 것과 달리 속히 오지 않자, 교회 여기저기에서 이단설 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교회는 급속도로 냉각되었고 처음 믿음과 사랑을 버리고 타협과 무관심에 빠지게 되었다.

 

4. 예수께서 주신 권면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예수께서는 에베소 교회에게“어 디서 떨어”졌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권면하신다. 그리고“회개하여 처음 행위를”가져야지 만일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치 아니하면“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엄숙하게 경고하신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호소의 말씀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주신 말씀이다. 우리가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의 순수했던 믿음과 열성을 생각해 보자. 지금이 오히려 처음 믿을 때보다 못하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는데 이것은 큰 문제다. 어디서 떨어졌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참된 신앙이란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신선해지고 더욱 감격스러워지는 상태를 말한다. 만일 우리 신앙이 계속 활력을 잃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우리 신앙은 메마르고 마침내 죽어 갈 것이고 마침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하신 두려운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초기 교회도 첫사랑의 교회였고 순결한 교회였다. 그리스도를 향한 그들의 사랑에는 생기가 있었고 진심에서 우러난 열렬한 애정표시가 있었다. 세상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았다. 여러 도시에 교회들이 세워지고 복음은 땅 끝까지 전파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초기의 열성과 헌신을 잃어버렸다. 교회 안에 이단들이 생겨났고 불신이 스며들며 처음의 열성과 사랑이 식기 시작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랑 없이 의무적으로 하는 신앙 생활은 부담스러운 것이다.

 

5. 에베소 교회가 결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 칭찬을 받았으며 그 상급은 무엇인가?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 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 2:6,7).

  에베소 교회는 여러 단점들을 가지고 있긴 하였으나 하나님과 교회 를 해치는 니골라당의 행위는 싫어하였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교회 안에는 언제나 니골라당이 있었다.

  그렇다면 에베소 교회가 미워하고 하나님께서도 미워하신다는 니골라당의 행위와 교훈은 무엇인가? 그리고 니골라당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요한계시록 2장 15절에보면 니골라당의 특성을 짐작할 수 있는 암시가 하나 나와 있다. 2장 14절에서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을 책망한 다음 2장 15절에서“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고 말하여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이 같은 것임을 암시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발람의 교훈이란 무엇인가? 발람은 이스라엘을 배도케 한 선지자였다. 발람의 교훈은 세상과의 타협이었다. 따라서 니골라당의 행위와 교훈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올무를 놓아 그들로 하여금 믿음에서 떠나 멸망케하는 것이었다. 니골라당(Nicolatans)이라는 뜻은 헬라어로‘정복하다’라는 뜻의‘니카오’(nikao)와‘백성들’이란 의미의‘라오스’(laos, 계 2:6~7)가 합성된 단어로‘백성을 정복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기사들을 종합해 보면 니골라당은 계명을 준수하는 것을 멸시하고 간음이나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 같은 것도 개의치 않는 쾌락주의에 빠진 원시 영지주의의 일파였을 것이다. 니골라당 교훈의 핵심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없애고 세상과 교회의 차이를 알 수 없게 만들며 세상과 타협을 일삼으면서 백성들을 정복할 만큼 강력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향락과 쾌락을 떠나서 홀로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하고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떠나서“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있는 영적 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성령의 음성을 듣고 사는 자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마침내 이기는 그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이 주어질 것이다. 초기교회 시대도 세월이 지나면서 그 열성이 식기는 했으나 여전히 기본 적인 충성심은 가지고 있었다.   초기교회 시대는 세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외부에서 밀려오는 핍박이요, 둘째는 내부에서 생겨나는 거짓 가르침들이요, 셋째는 재림이 지연되는 문제였다. 사도시대 교회는 니골라당의 교훈, 즉 교회를 해치는 거짓 가르침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여 하나님의 신임을 받았다.

 

 

6. 그리스도는 어떤 분으로 묘사되었는가?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 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계 2:8).

서머나(Smyrna)는 에 게해에 위치한 터키의 아름다운 항구 도시로 지금은 이즈미르(Izmir)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서머나는 B.`C. 1100년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B.`C. 800년경 도리아인들의 침략을 받아 그리스로부터 쫓겨난 이오니아인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터키 중서부에 걸쳐 위대한 문명을 건설하였다. 유명한 장님 서사시인 호메로스(Homer)가 태어나 활약한 곳도 바로 이곳 서머나였다.

한 때 리디아 왕국의 침략을 받아 페허가 된 이곳에 알렉산더 대왕은 새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 후 서머나는 버가모(Pergamum)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가 로마 제국에 편입되어 크게 번성하였다. 서머나는 대형 시장인 아고라, 20,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극장과 체육관 등을 갖춘 전형적인 로마의 도시였다. 또한 항구 상업 도시로써 발전하여 유대인들이 이곳에 많이 살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으므로‘유대인들의 훼방’에 관한 언급이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서머나는 비잔틴 제국, 오스만 터어키 제 국 등의 역사적 변천에도 불구하고 그 지리적인 중요성 때문에 계속 번성하였다. 비잔틴 제국은 도시 곳곳에 기독교적 유적을 남겨 놓 았으나 아랍 및 터키인들의 침략으로 기독교 유적은 거의 사라졌으며 수 차례의 지진으로 거의 모든 고대 유적지가 대파되었다. 서머나는 또한 침략자들에 의하여 잔인한 파괴와 핍박을 당한 도시이다.

고트족(Goths), 몽골족(Mongols), 셀쥬크족 그리고 십자군들까지 서머나를 침략하여 수만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또한 고대의 서머나 위에 현대의 도시를 건설하였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있는 고대의 유적은 그렇게 많지 않다. 세계 제1차 대전까지도 서머나는 인구의 5분의 4가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러나 결국 터키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에 굴복하게 되는 운명을 맞았다. 서머나는 몰약(myrrh)이라는 뜻이다. 에베소 교회가 1세기 사도시대의 아 름다운 초기 교회를 상징한다면 서머나 교회는 곧이어 일어날 극심한 환난을 당하는 2~3세기의 고난의 교회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즉 A.D. 100년부터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는 칙령을 발표한 A.D. 313년까지의 시대이다.

몰약은 짖이기면 더욱더 짙은 향기를 풍기는 향료다. 서머 나 교회는 극심한 고난과 핍박을 당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더 온 세상에 강렬한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발하였다. 이 박해시대의 교회는 비록 환난과 궁핍을 당하였지만 실상은 영적으로 부요한 교회였다. 그들이 당하는 고난이 크겠지만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었다(계 2:8~11).  서머나 교회에 편지하시는 그리스도는“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 아나신 이”시다. 처음이요 나중이라는 표현은 요한계시록에 자주 나오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변함 없으심을 말해주고 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이라는 표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높이고 찬송하는 말인데 핍박 당하고 순교 당하던 서머나 교인들에게는 부활의 소망을 상기시켜주고 영원한 소망을 일깨워 주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었다.

 

7. 서머나 교회는 어떤 환난과 시련을 당할 것인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계 2:9).

서머나 교회는 책망이 없는 교회다. 서머나 교회는 황제 숭배와 유대 인 율법주의자들 때문에 많은 핍박을 당하였다. 더군다나 궁핍하기까지 하였다. 서머나는 부유한 도시였지만 서머나의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하였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그들만큼 부요한 사람들이 없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환난과 궁핍은 그치지 않는다. 사단과 그의 무리들 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견디기 어려운 시험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면 언제나 승리는 우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부요한 사람들이다. 서머나교회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많은 환난과 궁핍을 당하였다. 1세기에 있었던 핍박 등은 네로의 핍박들을 비롯하여 즉흥적이고 일시적이었으나 2세기부터의 핍박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의도적이며 조직적인 것이었다. 이 시대에 대표적인 박해자는 로마황제 트라얀(Trajan, A.D. 98~117)과 디오클레티안(Diocletian, A.D. 284~305)등이 있었으며 폴리캅, 져스틴 말터 등 수많은 순교자들이 나왔다. 그들은 환난과 궁핍을 당하고 붙잡혀 짐승에게 찢기거나 화형을 당하기도 하였지만 영적으로는 순결하고 부요하였다.  이 시대의 순교자 중 요한의 제자 폴리캅이 유명하다. 지금도 서머나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는 폴리캅 기념 교회는 화재로 소실된 후 17세기에 새로 지어진 건물로 폴리캅과 관련된 yhtt여러 가지의 성화가 그려져 있다. 특히 폴리캅의 순교 장면을 그린 그림이 순례자들의 눈길을 끈다. 사도 요한의 직계 제자였 으며, 그로부터 직접 교육을 받았던 폴리캅은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다.

A.D. 156년에 서머나에서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지방 총독인 스타티우스는 잡아 온 11명의 그리스도인들을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의 먹이로 희생시켰다. 이때 폴리캅은 밀고로 체포된 상태에 있었는데 총독 스타티우스는 그를 살려주고 싶어서 그의 신앙을 부정하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폴리캅은 “86년간 나는 그분을 섬겨 왔고, 그분은 나를 한번도 모른다고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의 주님을 모른다고 하란 말인가?”하고 거절하였다. 총독은 할 수 없이 그를 화형에 처했다.

그러나 서머나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면서도 전혀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계 2:9). 그들은 거짓과 위선으로 교회를 훼방하고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훼방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기보다는‘사단의 무리들’이었다.

특별히 마지막 시대에도 서머나 교회 시대처럼 큰 환난이 있을 것인데 이런 무리들이 참된 진리를 가진 남은 무리들을 핍박하고 잡아주는 데 앞장 설것이다. 그들은 인류의 안전과 하나님을 위하여 그런 일을 한다고 강변하겠지만 사실은‘사단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믿음에 굳게 서 있지 않고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면 자신도 모르게 사단의 일을 할 수도있음을 깨닫게 된다.

 

8. 서머나 교회 시대는 얼마 동안 환난을 받을 것인가?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계 2:10).

서머나 교회가 환난을 10일 동안 받을 것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실제 로 10일일 리가 없다. 아무리 극심한 환난이라 해도 그것이 10일뿐이라면 그것을 환난이라고 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10일이라면 두려워 하거나 참지 못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10일이란 것은 비교적 짧은 기간을 말하는 그 당시의 표현이라고 설명한다(창 24:55; 단 1:12~15). 손가락을 펴면 열 개이기 때문에 10일이란 서머나 교회의 신실함이나 참을성을 시험하는 짧은 기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이 많은 예언적인 숫자를 사용하면서 10일이란 숫자를 그렇게 특별한 의미없이 사용했다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언된 10일은 1일을 1년으로 계산(민 14:34 ; 겔 4:6)하는 예언상의 10일 즉 10년으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한 해석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역사상 10년 동안의 극심한 환난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한 때가 과연 있었는가? 기독교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로마황제 디오클레시안 때의 핍박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Eusebius, Eccl. History, VIII. ch. 15).“이 시기에 디오클레티안이 시작하여 10년 동안 계속된 박해가 절정에 이르렀다. … 10년 동안 박해가 계속되는 동안에 박해자들 사이에는 음모와 내란이 그치지 않았다. …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말미암아 박해가 시작된 지 8년이 되던 해부터 완화되기 시작하여 10년이 되는 해에는 완전히 종식되었다(유세비우스 : 교회사, 엄성옥 역, 서울 도서출판 은성, 2003, 11, 408, 409).

A.D. 303년 디오클레시안은 그리스도인들을 투옥하고 극형에 처할 것이며 교회를 헐어버리라는 칙령을 내렸다. 이 칙령은 A.`D. 313년까지 10년 동안 시행되었으며 그 동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하 묘지로 피난하거나 붙잡혀 원형 경기장으로 보내졌다. A.`D. 313년 3월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그리스도교의 공인을 선포하였고 그리하여 10년 동안 계속되던 핍박은 끝났다.

 

9. 충성된 자가 받을 상은 무엇인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 2:10, 11).

  환난이 밀려올지라도 참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자는 비 록 세상에서는 고통을 당하고 혹은 죽임을 당할지라도 마침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증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지상에서 당하는 첫째 사망은 두려워 할 것이 못 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재림의 날 다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15:51~58). 우리가 정말 두려워할 것은 둘째 사망이다. 둘째 사망이란 마지막 대심판이 끝난 후 이 지구상에 내리는 최후의 심판을 말한다. 그때는 구원의 기회도 다시 없고 부활도 없다. 그러나 참고 이기는 자에게는 둘째 사망도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다.

 

 

10. 버가모 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분은 어떻게 묘사 되었는가?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 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계 2:12).

버가모(Pergamos)라는 뜻은‘높은 성(城),’‘높 다’혹은‘높이 들리워진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버가모는 그 당시 소아시 아의 정치적 중심지였으며 학문적 중심지이기도 했다. 버가모에는 장서 20 만 권을 소장한 도서관이 있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다음으로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버가모는 현재 인구 6만 명 정도의 소도시이며 베르가마 (Bergama)라고 불리고 있다.

버가모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도 시가 형성된 곳이나, 도시의 초기 역 사에 관해서는 알려져 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B.C. 420년에 벌써 자체 화폐를 주조한 것으로 보아 B.C. 5세기 에 발달된 도시였던 것으로 보인다.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이자 후계자 중의 한 사람인 리시마쿠스(Lysimachus)는 버가모가 천연적 요새에 위치하고 있음을 깨닫고 산의 정상에 성을 쌓고 아크로폴리스를 형성 하였다. 리시마쿠스가 죽은 후 버가모 왕국이 탄생하였고, 이후 버가모는 로마 시대를 거쳐 비잔틴 시대에 이르기까지 산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문화와 의학의 도시로 번영하였다. 이곳의 부의 근원은 농업과 은광, 가축, 양털 직조 그리고 글씨 쓰는 양피지였다.  양피지는 이곳에서 처음 제조되었다. 그 당시 유메네스 2세(B.C. 97~159)에 의하여 창설된 도서관에는 약 20만 권의 책들이 소장되어 있었는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버가모의 도서관이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보다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파피루스의 수출을 금지하자 최초로 양피지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버가모는 이교 숭배의 중심지였으며 거대한 제우스 신전을 비롯하여 유명한 신전들이 많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고대의 유명한 종합 병원이었던 아스클레피에이온이다. 아스클레피에이온은 주전 4세기에 세워진 병원으로써 치료의 신인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에게 바쳐진 것이다. 이 병원은 그 후 기원 후 400년 대까지 약 800년 간 소아시아에서 의료의 중심지 역할을 하 였다. 지진으로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아직도 그 잔해는 남아 있다. 병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돌로 포장되었으며 폭이 20m나 되는 길이 800m나 직선으로 뻗어 있다. 길 양편으로는 15m 높이의 돌 기둥들이 서 있어 장관을 이루는데 환자들은 이 긴 길을 걸으면서 명상을 통한 고도의 정신요법으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버가모에는 로마의 총독이 주재하였으며 로마의 추상 같은 명령이 전 아시아로도 전달되었다. 버가모에는 또한 로마의 대법원이 설치되어 있어서 아시아 각 도의 죄수들이 버가모로 호송되어 와서 칼날같이 엄격한 로마법에 의하여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로마는 권위와 칼의 상징이었다.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리스도는“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로 나타나신다. 그리스도께서 가진 칼은 로마의 칼과 달랐다. 그것은“살 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히 4:12)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다. 우리는 이 세상 권세의 칼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불순종하면 영원한 멸망에 이르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11. 버가모 교회에는 어떤 칭찬이 주어졌는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버가모 시(市)는 로마 제국에 합병된 하나의 식민 도시였지만 한 때 버가모 왕국의 수도였으며 문화의 중심지였고 양피지 제조업이 발달하였다. 버가모에는 여러 이교의 사원이 건립되었으며 제우스 숭배의 중심지였고 여러 황제들에게 봉헌된 신전들도 있었다. 버가모가 당시 로마의 아시아도에서 정치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당시 소아시아의 도시들 사이에서 경쟁적으로 퍼져나갔던 황제 숭배의 중심지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버가모는 또한 헬라신들을 섬기는 중 심지였다. 그들은 바위 위에 12m 높이의 제우스 제단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거대한 보좌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것은 버가모의 자랑이었으며 길이 39m, 너비 11m, 높이 12m의 웅장한 제단이었고 예술성이 뛰어난 건축물이었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것이 요한계시록에 언급된“사단의 위”라고 생각한다. 버가모는 참으로“사단의 위가 있는”곳이었으며“사단이 거하는 곳”(계 2:13)이라고 불릴 만큼 이교 숭배의 중심지였다.

그렇다면 버가모에서 죽임을 당했다는“충성된 증인 안디바”는 과연 누구인가? 유감스럽게도 안디바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안디바라는 이름은 신약에서 이 곳에만 나오는데 안디(anti)는 ‘반대하여’ 혹은 ‘대신하여 (in place of)라는 뜻이고 바(pas)는 아버지의 단축형이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를 대신하여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안디바는 아마도 이 이교의 중심 지에서 하나님 편에 굳게 서서 타협을 거절하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충성된 증인”의“증인”은 마르튀레스인데 여기서 순교자라는 영어 말터(martyr)가 나왔다.


터툴리안의 전승에 의하면 안디바는 버가모 교회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으 로 도미티안 황제 숭배를 거절하고 달군 놋쇠 가마에 들어가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라 한다. 주석가들은 안디바를 개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배교하고 교회를 적대하는 무리들을 상징하는 발람, 니골라당, 이세벨 등의 명칭이 한 개인이 아니고 그룹으로 쓰여진 것처럼 안디바도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무리들을 총칭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안디바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 어떤 고난을 당할지라도 생명의 면류관은 우리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12. 버가모 교회는 어떤 책망을 받았는가?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 2:14~16).

버가모는 안디바를 제외하고는 칭찬을 듣지 못했다. 거기에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으며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고 배척하였는데 버가모는 그렇지 못했다. 니골라당은 무엇을 말하는가? 요한계시록에는 니골라당에 대하여 별다른 설명이 나와 있지 않지만 2장 15절에 니골라당의 특성을 짐작할 수 있는 암시가 하나 나와 있다. 2장 14절에서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을 책망한 다음 2장 15절에서“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고 말하여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이 같은 것임을 암시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그것이다.

니골라당(Nicolatans)이라는 뜻은 헬라어로‘정복하다’라는 뜻의 니카오(nikao)와 백성들이란 의미의 라오스(laos)가 합성된 단어로‘백성을 정복한다’는 뜻이다. 발람이라는 이름도 역시 히브리어로‘백성을 정복한다’는 뜻이고 보면 이 두 이단은 그 성격이 같은 것이라고 하겠다. 2세기경의 저자인 이레니우스는 그의 책‘이단에 대하여’(Against Heresies 1, 26, 3)라는 책에서 니골라당이란 안디옥의 니골라를 따르는 무리들이며 기독교의 교리를혼란스럽게 만들고 방종스럽게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렇다면 발람의 교훈이란 무엇인가? 발람은 이스라엘을 배도케 한 선지자였다. 하나님의 선지자 중 한 사람이었던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의 뇌물에 마음이 끌려 이스라엘을 저주해 주고 싶었지만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셨다. 그러자 간교한 발람은 이스라엘을 타락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압 왕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모압 여자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남자들을 꾀어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보지 않으실 것이고 모압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발람의 이 계교는 적중해서 이스라엘은 모압 여인들을 아내로 맞아들였으며 음란한 우상 숭배에 빠졌고 그 결과 전염병으로 24,000명이 죽음을 당했다(민 25:1~9). 발람의 교훈은 세상과의 타협이었다. 따라서 니골라당의 행위와 발람의 교훈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올무를 놓아 그들로 하여금 믿음에서 떠나 멸망케 하는 것이었다. 사단의 위는 고대의 버가모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현대의 우상들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도처에서 사단이 지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렇게 위험할 때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잡고 죽을지라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안디바 같은 믿음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버가모 교회 시대는 교회가 서머나 교회 시대의 긴 핍박에서 벗어나 정부의 후원과 자유를 얻은 시기였다. 콘스탄틴 황제는 A.D.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고 교회에 많은 특권을 주었다. 그러나 권력의 비호를 받은 교회의 번영과 자유는 또한 타락의 시작이었다. 로마의 황제가 교회를 비호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들이 있었다. 그가 기독교의 후원자가 된 것은 단순히 호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광대한 로마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려면 어떤 통일된 이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황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기독교를 사용하여 그 일을 이루기로 결심했다.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 칙령(Edics of Milan)을 발표하여 기독교를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하고 교회와 성직자들에 대하여 군복무와 세금을 면제하였을 뿐 아니라 각종 특혜를 주기 시작하였다. 자연히 박해는 끝나고 국가 권력과 교회는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과의 타협은 교회에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었다. 국가는 교회에 특권들을 주는 대신 교회에 대하여 일정한 양보를 요구하였고 교회도 그것을 거절하기 어렵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콘스탄틴 황제는 효과적인 통치를 위하여 로마 제국 내에 있는 여러 이교(異敎)들과 기독교의 조화를 시도했다. 종교의 화합에 제일 걸림돌이 되는 것은 예배 의식과 예배일(禮拜日)이 다른 것이었다. 그는 많은 변화를 시도했지만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예배일을 성서적 안식일인 토요일에서 이교들의 태양 숭배의 제일(祭日)인 일요일로 바꾸는 법을 공포한 것이다. 그것은 성경 말씀을 짓밟 고 계명을 무시하는 엄청난 배도(背道)였다. 인간이 어찌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바꿀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참람된 행위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교회는 이미 저항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교회는 이 말도 안 되는 세속적 결정을 오히려 신학적으로 지원하고 교리화하였다.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키도록 한 A.D. 321년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법령은 다음과 같다.“존경할 만한 태양의 날에 도시에 거주하는 행정관들과 백성들은 쉬도록 하며 모든 작업장은 문을 닫도록 하라. 그러나 시골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자유롭게 합법적으로 그들의 일을 계속할 수 있다” (Codex Justianus, Book 3. title 12, 3, trans. in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02],3:380).  가장 중요한 방벽이 무너지자 그 다음에는 물밀듯이 세속의 관습과 제도들이 교회 안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성직자들은 권력의 후원과 달콤한 특권들에 취해서 급속도로 타락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260년 동안의 길고도 긴 중세 암흑 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역사는 다시 되풀이 될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 무서운 핍박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도 과도하게 세상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교회와 교인들을 향한 어떤 핍박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종교 지도자들은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이 오히려 사회 생활을 하기에 유리하게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세속적 물결과 안일함이 교회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수백억짜리 교회 건물들이 올라가고 고급 승용차들이 주차할 장소가 없을 정도로 밀려온다 하더라도 진리를 양보한 교회는 이미 죽은 것이다. 차라리 박해가 있고 순교자가 나올 때가 교회는 더 순결하였다. 세상이 주는 지원과 특권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영감성과 절대성을 훼손하고 변질시키는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사단이 소원하는 바일 것이다. 타협할 줄 몰랐던 초대 교회가 그리워진다. 박해를 받았으나 꺼지지 아니하고, 핍박을 당했으나 더욱 타올랐던 순결한 신앙의 불꽃들!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았으며, 단 한 마디 하나님을 부인하는 말을 하기를 거절하고 찬송하며 원형 경기장으로 걸어 들어갔던 장엄한 신앙들이 아쉽다.   모일 장소가 없어 동굴이나 다락방을 전전할지라도 성령 충만한 모습으로 하늘을 우러러 살던 그들의 신앙이 부럽다. 그럴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강력한 하나님의 기관이 되고 세상을 향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버가모 교인들에게“회개하라”고 권면한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그“입의 검으로 그들과”싸우리라고 하신다. 검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므로(히 4:12),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심판하시겠다는 엄숙한 경고의 말씀이다.

 

13. 버가모 교회에 주시는 상급은 무엇인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버가모 시대 같은 세속화 시대, 원칙이 무너지는 타락한 시대에 하나님 편에 우뚝 서서 충성을 다하고 온갖 회유와 박해를 이겨내는 자에게는 상으로“감추었던 만나”와“흰 돌”을 줄 것이라고 하였다. “감추었던 만나”는 무엇인가?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40년 동안이나 은혜로 주셨던 생명의 양식이다. 그것은 어떠한 장소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들을 살피시며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보증이기도 하였다. 만나는 광야 생활이 끝난 후에는 법궤 안에 감추어져 지성소 안에 보관되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만나”즉“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요 6:51)으로 소개하셨다. 그러므로 “감추었던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그러므로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순결을 지킨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엇 보다 가장 귀한 보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얻게 될 것이다. “흰 돌”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 전체를 통하여 흰색(leukos)은 영광과 승리와 순결의 상징이다(계 2:17, 3:4, 4:4, 6:11, 7:9, 19:14, 20:11). 하나님의 보좌도 흰색이다(계 20:11). 요한계시록에서는 흰색이 항상 그리스도나 혹은 그리스도와 관련된 무엇을 나타내고 있다.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머리와 털은 희기가 흰 양털 같았다(계 1:14). 진실한 신앙인들은 새 이름을 기록한 흰 돌을 받으며(계 2:17), 또 그들은 흰 옷을 입는다(계 3:4, 5, 18). 이십사 장로들도 흰 옷을 입으며(계 4:4), 순교자들과 셀 수 없는 큰 무리들도 모두 흰 옷을 입었다(계 6:11, 계 7:9, 13). 인자가 흰 구름 위에 앉아 계시며(계 14:14), 다시 오실 때도 그는 흰 말을 타고 있으며 그를 수행하는 하늘의 군대도 흰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있다(계 19:11, 14). 고대의 재판정에서 흰 돌은 무죄를 가리는 투표의 도구로 쓰여졌으며 운동 경기에서는 최종 승리자에게 수여되는 메달로 쓰였다. 그 돌 위에 기록된 새 이름은 새로운 인격과 새로운 관계를 의미한다. 이제는 그전 사람이 아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고후 5:17). 오늘날 세속적인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리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마침내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을 승리와 구원의 표로 하나님께 받게 될 것이다.

 

14. 두아디라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어떻게 묘사되었는가?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계 2:18).

  두아디라(Thyatira)는 다른 여섯 도시에 비하여 별로 이름이 없는 도시다. 현재는 아키사르(Akhisar)라고 불리우는 현대 도시 밑에 파묻혀 있다. 두아디라란 이름의 뜻은‘수고의 향기’라고 알려지고 있다. 모직, 피혁, 도자기 제조, 염색업 같은 제조업이 발전하였으며 주석의 제련업으로도 유명하였다. 일부 계급은 부유하였으나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최저 임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도시였다.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서도 가장 긴 편지를 받고 있다.  그만큼 이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이 지대하신 까닭이다. 바울이 유럽의 첫 성읍 빌립보에 도착했을 때 유대인의 회당이 없어서 안식일에 강가에 나가 외롭게 예배를 드린 일이 있었는데 그때 바울을 만나 침례를 받은 루디아라는 여자가 바로 두아디라 출신 자주 장사였다. 두아디라 교회는 아마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세워졌을 것이다. 두아디라는 특히 붉은색과 자주색의 염색으로 유명했는데 중세 암흑 시대 로마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의 예복이 자주 색깔이었음은 의미심장하다. 특히 요한계시록 17장의 음녀가“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계 17:4) 나타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두아디라 교회 시대는 역사적으로는 중세의 암흑 시대에 속한다. A.`D. 538년 로마의 교황이 지상권을 장악하면서 시작된 암흑 시대는 A.`D. 1517년 종교개혁으로 내리막길을 걷다가 1798년 교황이 프랑스 군인들에게 체포되면서 그 막을 내린다. 로마 법왕권의 극성 시대가 시작되는 연대, 즉 두아디라 교회 시대의 시작을 어디로 잡느냐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견해들이 있다.

1
A.D. 476년 로마의 멸망이 교황권의 극성을 가져왔다.
2
A.D. 496년 프랑스왕 클로비스가 회심했다.
3
A.D. 538년 절대적인 교회 권력을 교황에게 주는 유스티니아누스 칙령이 효력을 발휘했다.

 

그 중에서 A.`D. 538년을 로마 교황권의 극성이 시작되는 기산점으로 잡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며 성경상의 연대 계산에도 일치한다. 로마 교황권의 대낮은 세계의 밤중이었다. 그 암흑 기간 동안 많은 충성스러운 성도들이 로마 교황의 박해를 받아 화형주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타락한 로마 교황권에 저항한 왈덴스인 들을 비롯한 개혁자들은 깊은 골짜기와 어두운 토굴에서 그들의 신앙을 이어왔으며 체포된 사람들은 악명 높은 종교 재판소에서 그들의 신앙을 포기할 것을 강요받았다.

이런 두아디라 교회에 그리스도는“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난다. 요한계시록에‘하나님의 아들’로 표현된 곳이 이곳밖에 없다. 거짓 선지자 이세벨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맞서고 있다. 이것은 긴 암흑 세월 동안 온갖 박해를 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눈은 어떤 암흑도 꿰뚫고마는 불꽃이다. 그 눈은 성도들이 당하는 모든 억울한 사정과 그들에게 행해지는 불의들을 낱낱이 보시며 진노하신다. 제련소에서 나오는 빛나는 쇳물이 그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가는 곳은 모든 장애물들이 사루어져 없어지고 만다.

 

15.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칭찬과 책망은 무엇인가?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 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계 2:19~21).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권면은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길다. 두아디라 교회는 우선 그들의‘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때문에 칭찬을 받는다. 그리고 나중이 처음보다 더 좋게 발전하는 교회였다.

그러나 위험은 자주 내부에서 일어난다. 외부의 핍박에는 용감하게 맞서면서 그들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던 사람들이 내부의 불화나 세속적인 타협에는 어이없이 무너지고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거짓 선생들은 스스로를 선지자라고 하나 사실은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와 타락으로 몰고 간 이세벨과 같은 사람들이다.

두아디라 교회의 형편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신앙 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환난이나 고통이 아니라 세상과의 타협이나 세속화되는 것이다.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온 교활한 이세벨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  두아디라 교회 시대에 해당되는 중세의 암흑 시대 때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일들을 이루어냈다. 왈덴스인들은 라틴어 성경을 지방의 언어로 번역하여 가는 곳마다 전하였으며 순교의 위협을 무릅쓰고 사랑과 믿음을 가진 섬기는 전도자로 살았다. 그들 중의 상당수는 성경상 제칠일 안식일을 신실히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는 책망 받을 일이 있었다. 그것은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한 것이었다. 이세벨은 북방 시돈왕 엣바엘(Ethbaal)의 딸이며 이스라엘 제7대 왕아합의 부인이다. 정책적으로 이스라엘 왕의 아내가 된 이세벨은 온 이스라엘을 바알과 아세라 여신 숭배에 몰아넣었다. 이세벨 때문에 우상 숭배에 빠지게된 이스라엘은 삼 년 반 동안의 가뭄을 겪으면서 호된 시련을 당하였으며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과 대결하면서“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 18:21)하고 절규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두아디라 교회가 받아들여서 교회가 타락하게 된 그 이세벨은 도대체 누구인가?

우상 숭배자 이세벨이 이스라엘과 결혼 관계를 맺어 온 이스라엘에 이교의 우상 숭배를 퍼뜨린 것처럼 두아디라가 용납한 이세벨은 두아디라 교회를 타락시킨 이교의 영향력을 대표할 것이다.

전술한 대로 버가모 교회 시대에 로마 황제의 승인을 얻어 공인 받고 특혜를 누리게 된 로마 교회는 이제 두아디라 교회 시대에 이르러서는 세속 권력도 좌지우지하게 될 만큼 권세가 커졌 다. 교회는 권력에 취하였고 타락해 가는 과정에서 많은 이교의 관습과 교리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다는 책망의 말씀이 발해진 것이다. 대표적인 것들이 마리아를 비롯한 성상숭배의 교리다. 할 수없이 로마 교회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의 둘째 계명을 자기들의 성경에서 삭제할 수밖 에 없었다.

그 외 신비 종교인 미스라 (Mithra)의 태양 숭배에서 나온 크리스마스라든지 부활절의 관습 같은 그 당시 이교의 풍습이 교회 안에 들어왔다는 것도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백과사전에서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의 유래를 찾아볼 것). 구약 시대의 이세벨이 선지자들에 의해 회개하라는 경고를 받은 것처럼 로마 교회도 외부의 개혁자들과 내부의 경건한 신도들에 의해 회개와 개혁을 요구받았다. 그러나 이세벨이 끝내 거절한 것처럼 두아디라 시대의 로마 교회도 그 모든 호소와 경고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6. 회개를 거절하는 그들에게 어떤 벌이 임할 것인가?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계 2:22~23).

하나님께서는 세상과의 타협을 싫어하신다. 침상에 던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그것은 고통의 침상이요 병자의 침상이다(마 9:2). 타락한 세상이나 교회를 따르 고 그의 혼합된 교리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결국 큰 환난을 당할 것이다. 이세벨의 자녀들이 멸절된 것처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 님의 엄정한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17. 두아디라의 충성된 사람들에게는 어떤 약속이 주어졌는가?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 2:24~29).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에는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편에 신실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여기서‘알지 못한다’라는 헬라어는 직접 관계를 통해 체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신실한 사람들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약속하셨다. 또한 그들은 새벽별을 받을 것이다.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특별하고도 깊은 관계를 갖게 될 것이다.  이세벨 시대에 이세벨의 우상 숭배 정책에 동조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여 통탄하고 순결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두아디라 교회 시대에도 교회의 부패를 슬퍼하고 경고하다가 핍박을 당한 많은 경건한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태리와 프랑스의 궁벽한 알프스 산중으로 피하여 성경을 번역하고 전하며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하고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기로결심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께

서는 더 이상의 것을 요청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순결한 신앙을 재림때까지 굳게 잡고 있으라고 권면하신다.

쫓기고 핍박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참고 충성을 다한 사람들은 마침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후 성도들이 천년 동안 왕 노릇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그분의 보상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새벽 별을 주리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에서 새벽 별은 일차적으로“예수 그리스도”(계 22:16)를 의미한다.

베드로도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벧후 1:19)고 하여 새벽 별이 그리스도임을 암시하고 있다. 참고 이기는 자들은 종교적인 암흑을 벗어나 마침내 새벽 별 같은 그리스도를 만날 것이다. 그러나“내가 새벽 별을 주 리라”고 하셨기 때문에 새벽 별을 그리스도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두아디라 교회에 주신 훌륭한 지도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종교 개혁의 새벽 별이라고 불리우는 위클립이나 루터를 비롯하여 여러 개혁자들이 새벽 별처럼 떠올라 중세의 암흑을 밝혔기 때문이다.

 

명상할 문제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해 본 일이 있는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처음 사랑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가?
고난이 왔다고 해서 쉽게 실망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떨고 슬퍼하며 낙망하지는 않았는가? 혹시라도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이세벨의 교훈에 빠져 하나님을 슬프게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여 죽도록 충성하면 우리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공부하신 내용에 대한 문제를 풀어 보시겠습니까?

1. 일곱 교회는 어디에 있었는가?
2. 에베소 교회에 주신 책망은 무엇인가?
3. 서머나의 뜻은 무엇인가?
4. 10일 동안의 환난을 시작한 황제는 누구인가?
5. 버가모 교회에게 하신 책망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