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실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어 장례식을 치 르게 되었다. 그런데 교인들이 할아버지께서 평소에 당신의 장례는 꽃 상여를 메고 나가게 해달라고 하셨으니 상여를 메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상여를 빌렸다.
상여를 멘 남자 집사님들은 곡하는 대신 찬송을 부르면서 전진하였고 맨 앞에는 하나의 대형 만장이 휘날리고 있었다. 바로 만장 뒤를 목회자가 성경책 을 들고 행렬을 인도하였다. 만장에는 한글로 큼지막하게“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라고 쓰여 있었다. 읍내 사람들은 한글 만장을 보고 신기해 했다. 그리고 읽어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것은 슬픈 장례 행렬이 아니었다. 죽어도 다시 산다는 위대한 승리의 행렬이었다. 부활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최대의 선물이요 약속이다. 오늘 하나님을 믿고 산 사람들은 언제 죽는다해도 다시 살아나 요한계시록 21장의 아름다운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것이다.
* 우리는 드디어 대쟁투의 끝에 이르렀다. 이제는 사단도 없고 짐승도 없고 바벨론도 없어졌다. 우주에서 악의 흔적은 영원히 사라졌다. 지구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재창조되었다.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은 성경의 마지막 장이며 승리의 개가가 드높이 울려 퍼지는 장이다.
요한은 일천년 후에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오는 것을 계시를 통하여 본다. 하늘에서 악인들과 천사들의 심판을 도우며 일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보냈던 성도들이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 심판의 불이 하 늘로부터 비처럼 쏟아져 악인들을 영원히 사를 때 성도들은 성 안에 안전히 거하게 된다.
마침내 모든 악의 흔적은 없어지고, 하나님께서 재창조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진다. 그리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와 지구에 자 리 잡는다. 모든 눈물은 영원히 사라진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요한계시록 21장 9~27절에는 새 예루살렘 성의 장엄하고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정사각형으로 네모 반듯한 성이며 열두 진주문이 있고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았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는데 거기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춰 밤이 없기 때문이었다(21:25).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그 안에 살 수 있을 것이다.
1. 악인들의 심판이 완전히 끝난 후에 지구는 어떻게 변하는가?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우리는 전 장에서 1000년 후, 대심판이 있고 죄인들이 둘째 사망으로 형벌을 받아 영원히 사라진 것을 보았다. 이제 지구는 재창조 된다. 죄로 얼룩진 지구는 무서운 지진과 유황불로 용광로처럼 끓어올라 옛날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름답게 변한다. 지구 표면을 덮고 있었던 거대한 바다는 새 땅에는 없을 것이다.
어디를 가나 사람이 살기 좋은 강들과 호수 그리고 수목이 우거진 아름다운 땅들이 지구 전체를 덮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은 “바다도 다 시 있지 않”다고 말했을 것이다.
2. 재창조된 지구에 무엇이 내려올 것인가?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예루살렘이 복음의 중심지가 되고 축복의 근원이 되어 세상의 수도가 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배반하고 거절하였으며 예루살렘 성은 영원히 파괴되고 말았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새로 창조된 지구에 성도들의 거처가 되고 지구의 중심이 될“새 예루살렘 성”을 보내주신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 이 성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아름다웠으며 영원히 계속될 것이었다.
3.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
땅과 바다와 하늘에만 변화가 온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삶이 전적으 로 달라진다. 죄악 세상에서의 삶은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병으로 시달렸고 죽음과 불행이 있어서 애통하는 것이 끝이 없었다.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그런 것들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아름다움을 요한은 부정의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바다도 없고, 사망과 애통이 없고, 아픈 것이 다시 없으며, 해와 달의 비췸이 쓸데없고, 밤이 없고, 저주가 없다.
4.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계 21:5~6).
이제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을 선언하신다. 그리고“다 이루었다”고 공표하신다. 이루었다는 헬라어 게고넨(gegonen)은 16장 17절에서 일곱번째 재앙이 내릴 때도 쓰인 말로써“모든 것이다 이루어지고 끝났다”라는 의미이다. 생명수 샘물은 영생을 말한다. 목마르다는 것은 영적인 갈망을 말한다. 누구든지 진리를 간절히 구하는 자는 생명수를 마시고 영원히 살 것이다.
5. 이기는 자와 믿지 않는 자에게 주실 상과 벌은 무엇인가?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7~8).
믿고 이기는 자들과 믿지 않고 두려워하는 자들이 선명하게 비교되고 있다. 이기는 자들은 영생과 기쁨과 새 예루살렘성을 얻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1000년기가 지난 후 유황 불에 떨어져 둘째 사망을 당할 것이다. 우리들의 영원한 운명은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느냐 혹은 믿지 않고 거절하느냐에 달려 있다.
6. 어린양의 아내는 누구인가?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계 21:9~11).
아직도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가 말하고 있다. 천사는‘어린양의 신부’를 보여주겠다고 하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이‘어린양의 신부’임이 확실하다. 왜 교회나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새예루살렘 성이 신부가 되는가? 그것은 새 예루살렘 성이 바로 거대한 교회요 성도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성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성 안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기 때문에 신부가 되는 것이다.
7. 새 예루살렘 성의 모습은 어떠하였는가?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그 성 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계 21:12~21).
요한계시록 21장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성은 전체가 보석처럼 아름답다. 성곽은 벽옥으로 쌓여 있고 열두 문은 진주로 되었으며 성의 기초석은 각종 보석으로 꾸며 있고, 그 길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깔려 있다.
성의 크기는 일만 이천 스타디온(약 2200km)이고 성곽은 144규빗(약 64m)이라 하였다. 성의 크기라는 것이 한 면의 길이를 말하는 것인지 전체 둘레를 말하는 것인지 확실치 않으며 144 규빗도 높이를 말하는 것인지 성곽의 두께를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성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화려함이나 웅장함도 이 성의 아름다움이나 장려함에 비하면 먼지와 같 을 것이다. 장과 고가 같다는 것은‘같다’라는 헬라어가‘조화롭다, 균형지다’의 뜻도 있기 때문에 장과 고가 잘 균형진 성이라는 뜻으로 봐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새 예루살렘 성의 아름다움과 거대함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으로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실제 크기나 아름다움을 그대로 묘사한 것인지가 문제다.
그러나 성도들이 거하는 새 예루살렘 성이 실제로 존재하는 이상 그 크기나 아름다움도 실제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혹자는 하늘 도성이 너무 물 질적으로 생각되는 것을 경계하여 이 모든 것들을 상징으로 생각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것은“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 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고전 2:9)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화려하고 큰 것이라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성에는 12문이 있고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쓰여져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들이 그 문으로 자유롭게 출입하며 거주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성경은 구원얻은 자의 유업을 본향이라고 부른다(히 11:14~16 참조). 그 곳에서 하늘의 목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양 무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 생명 나무는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다. 흘러 다함이 없는 강은 수정같이 맑고, 그 가에 있는 나무들은 구속받은 주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준비된 길 위에 그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넓은 평원이 아름다운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하나님의 산들은 높은 봉우리들을 뻗고 있다. 이 평화로운 평원에서, 이 생명 강가에서, 오랫동안 순례자요 방랑자로 살아온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은 그들이 거할 집을 발견한다”(각시대의 대쟁투, 674).
8. 요한은 성 안에서 무엇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는가?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 21:22).
사도 요한은 분명히 성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요한계시 록의 여러 곳에서 하늘 성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요한은 하늘 성전의 성소에서 일곱 금 촛대를 돌보시는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목격하였으며(계 1:12~18)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을 보았고(계 4:5), 요한계시록 8장 3~5절에서는 하나님 보좌 앞의 금 향로와 금단에 대해 언급했으며 11장 19절에 기록하기를“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 인다고 했다. 또 요한은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 (계 15:5~8)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하늘 성소는 지상 성소의 원형이 되기는 해도 지상 성소와 같은 작은 구조물은 아닐 것이다. 다니엘 7장 9~14절에 보면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성소를 여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 성소는 광대하고 영화스러울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 타락한 이후,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하늘 보좌 자체가 성소라는 비상 구조로 운영되었는지도 모른다. 성경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처소는 그분의 성소 또는 성전 안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영화로우신 보좌”는 원시부터“우리의 성소”(렘 17:12)라고 선언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 에서 내 소리를 들으신다고 하였다(시 18:6).
그렇다면 요한은 왜 성전을 보지 못했다고 했을까? 요한이 성전을 볼 수 없었다고 말한 요한계시록 21장 22절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진 성 안의 광경임을 알 필요가 있다. 하늘 성전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비상 시기 에 필요한 구조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이제 성소의 역할이 끝났다. 그래서 요한이 보지 못한 것이다.
9. 성 안에는 밤이 없는가?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계 21:23~25).
새 예루살렘 성이 자전하는 지구에 내려왔기 때문에 해도 있고 달도 있어서 낮과 밤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이 밤이 없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만큼 넉넉하기 때문이다. 성을 비추기 위해 별도의 발광체는 필요 없을 것이 다.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어둡고 무서운 밤은 분명히 없을 것이다. 이 장면은 아마도 요한이 이사야 60장 19~20절의 기록을 생각하면서 썼을 것이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 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 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니라.”
10. 어떤 사람들이 그 성에 들어갈 수 있는가?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 21:26~27).
땅의 왕들이 성 안으로 들어온다는 표현이나“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온”다는 말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 안을 왕래할 것을 가리킨다. 그들이야말로“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벧전 2:9)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결단코 그 아름다운 성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영원하고 아름다운 하늘 나라가 있는 것이 분명한 이상, 우리는 거기에 들어갈 수 있도록 결단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얻는 순간의 만족을 위하여 영원을 희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명상할 문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 세상에서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는 것은 사실은 사는 것이 아니다. 교통 사고 한 번만 나도 우리 목숨은 사라지며 전화 한 통에 최고의 행복도 사라지고 마는 것이 이 세상의 삶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굉장한 삶을 우리는 한 번도 맛 보지 못했다. 우리가 이 세상으로 만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하루살이가 전등 밑을 몇 시간 동안 돌다가 떨어져 죽으며 이것으로 만족하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엄청난 삶이 있다는 것을 하루살이는 상상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필코 하늘에 가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상상도 못할 것들을 누려야 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깨어 있어 정신을 차려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