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수십만 명의 노동력은 국가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이스라엘을 놓아주기를 거절하였다. 그러자 애굽에는 열 가지의 재앙이 내렸다. 그 중에서 열 번째 재앙이 바로 큰 아들이 죽는 무서운 재앙이었다. 그날 밤 애굽 땅에 사는 집은 누구나 그 재앙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날 밤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을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 주셨는데 그것은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이었다. 그것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어린양의 피를 보고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어린양의 피는 십자가에 돌아가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오늘날도 우리를 구원하고 이 죄악의 역사를 끝낼 수 있는 분은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요한계시록 제5장은 그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 제5장을 시작하며… 제4장에서 요한은 열린 문을 통하여 들어가서 하늘 보좌의 영광과 천사들의 찬송을 친히 바라보고 들을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제5장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는 어린양을 본다.
제5장의 주인공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다. 천만 천사들과 이십사 장로들의 찬양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되고 있다. 제5장은 다섯 장면으로 되어있다. 즉 서론(1절), 문제(2~5절), 문제 해결(6~10절), 천만 천사들의 찬양(11~12절), 모든 만물의 찬양(13~14절)이 그것이다.
5장은 어린양이 출현해서 인(seal)을 떼는 장면이다.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펴서 그 인을 뗄 자격이 있는 존재가 우주에는 아무도 없어서 요한은 크게 울었다. 그러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을 받으셨다. 5장의 후반부는 어린양에 대한 전 우주적인 찬양이다. 먼저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찬양하고 많은 천사들이 큰 음성으로 찬송하며 마지막으로 모든 만물이 부르는 장엄한 삼중 합창으로 5장은 끝난다.
5장은 또한 하늘 성소의 장면이다. 기도의 향이 올라가면서 어린양의 봉사가 있다. 지상 성소는 하늘 성소의 그림자로 주어졌다. 그렇다면 하늘에 지상 성소의 원형이 존재하는가? 하늘에 정말 번제단이 있고 향로가 있으며 떡상이 있는가? 하늘 성소가 하나의 구조물로 존재하는가? 지상 성소가 하늘 성소의 원형을 본따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하늘 성소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것이다. 성경에는 하늘 성소가 하늘만큼 광대하다고 생각되는 표현도 있고 연기가 차는 어떤 실제적 구조물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묘사도 있지만 지상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설한 그런 종류의 성소는 아닐 것이다.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의 봉사를 그런 작은 공간에 제한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늘 성소를 생각할 때 광야의 작은 성막이나 솔로몬의 성전을 연상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어쩌면 인간이 타락한 이후,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하늘 보좌 자체가 성소라는 비상 구조로 운영되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 아마도 지성소이며 성소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구조일 것이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는 하늘 성소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모든 일들이 마쳤기 때문에 성소의 역할도 끝났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것을 넘어설 수는 없으며 한정된 추측이나 상상으로 하늘 성소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 요한은 계시 중에 하늘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계 5:1).
요한은 영광의 보좌에 좌정하신 하나님께서 그 오른손에 한 두루마리 책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옛날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가장 큰 것도 부피 때문에 길이가 10m를 넘지 못했다. 보통 한쪽 면만 사용하였지만 내용이 넘칠 경우에는 할 수 없이 양 면을 사용하기도 하였는데(겔 2:10), 이 책이 안팎으로 쓰였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는 증거다. 그것은 아무나 볼 수 없도록 일곱 인으로 봉인된 비밀의 책이었다. 일곱이란 숫자는 완전수로써 그것이 완전히 봉인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책은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 아무도 볼 수 없도록 봉인되어 있을까? 로 마법에 의하면 유언장은 일곱 명의 증인들이 봉인하였으며 합법적인 권리자만 그 인봉을 뜯고 그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아마도 이 세상의 미래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목적이 담긴 책일 것이다. 사람은 아무도 그 책을 펼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그 책의 인봉을 떼시고 하나님의 비밀을 우리에게 드러내실 권리를 가지고 계신 것이다.
2. 인봉된 책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계 5:2~4).
요한은 그 책의 내용을 알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하늘의 천사도 그 책의 인봉을 뗄 수 있는 자격이 없었다. 요한은 실망하여 크게 울었다. 요한이 쓸쓸한 밧모 섬에 갇혀 있으면서도 얼마나 사람의 구원을 갈망하고 영혼을 사랑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 책의 내용이 무엇이길래 아무도 그 책에 접근할 수 없었는가? 그것은 각 시대에 걸쳐 감춰진 비밀 즉 우주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들의 구원은 무한한 섭리와 하나님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전 우주에서 구원의 열쇠를 가진 존재는 한 사람도 없다. “아무도 결코 그 형 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의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시 49:7~8).
그러나 그 책의 내용이 아무리 비밀스럽고 오묘한 기록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오른 손 안에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아무도 그 비밀을 알지 못하며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없다. 그 봉인을 떼는 것은 인간의 권한 밖의 일이며 오직 피 흘려 돌아가신 어린양만이 그 인을 떼실 수 있는 것이다.
3. 누가 그 일을 해결할 수 있었는가?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계 5:5).
하나님께서는 요한이오랫동안 슬퍼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시고 곧 한 장로를 보내시어 그를 위로하신다. 아무도 그 인을 뗄 수 없으면 사람을 구원할 해결책이 없을 터인데 능력있는 한 분이 있어 그일을 감당하신다는 희망의 소식이다. 그분은“유다 지파의 사자(獅子)”이며“다윗의 뿌리”라고 소개된다. “다윗의 뿌리”라는 말이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된다. 예수께서 친히 말하기를“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계 22:16)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 “유다 지파의 사자”도“다윗의 뿌리” 와 동격으로 쓰였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임에 틀림없다. “다윗의 뿌리”가 왕으로서의 예수를 의미했다면“유다 지파의 사자”는 승리하시는 예수를 표상한 말이다. 그렇다, 온 우주에서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들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모든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하게 자격이 있는 분이시며 승리자이시다.
4. 그 어린양은 어떻게 묘사되었으며 무슨 일을 하였는가?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계 5:6~7).
봉인을 뗄 자가“유다 지파의 사자”라고 강력한 이미지로 소개되었으나 요한이 실제로 본 것은 한 어린양이었다. 더군다나 그 어린양은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신약 성경에서 어린양은 언제나 예수를 표상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요 1:29; 행 8:22;벧전 1:19).
그러므로 이곳에 등장한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 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상징하는 것이 틀림없다. 예수께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과 같은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 없는 생애를 보내셨으며 우리들의 구원을 위하여 말할 수 없이 큰 희생, 즉 십자가상의 죽음을 당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이며 하나님의 품성을 온 우주에 드러낸 사건이었다.
어린양이 가지고 있는 일곱 뿔과 일곱 눈은 무엇을 말하는가? 일곱은 완전을 의미하고 뿔은 권세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리스도가 소유하고 있는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권세를 의미한다. 양이 가지고 있는 일곱 눈은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서 완전한 통찰력과 예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어린양 즉 예수께서는 그의 피로 얻으신 권한으로 하나님의 손에서 그 책을 취하실 수 있는 것이다.
5.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은 어떤 노래를 불렀는가?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새 노래를 노래하며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더라”(계 5:8~10).
어린양이 그의 피로 인봉된 책을 넘겨받는 것을 보는 순간,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의 찬송이 터져 나온다. 그들은 이 엄숙한 광경에 압도되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예수의 사랑에 감동되어 어린양 앞에 엎드러 진다. 그들의 손에는 향이 가득한 금대접이 있다. 그 안에는 성도들의 기도가 있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부르는 찬송을“새 노래”라고 했다. 이 노래는 구원받은 자들만이 부를 수 있는 경험의 노래이다. 하늘의 천사라도 부를 수 없다. 그들에게는 죄에서 구원받은 감격과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십사 장로들은 사람 중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새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새 노래는 일찍 죽임을 당하시고 사람들을 피로 사서 구원하신 예수를 찬양하는 노래이다.
6. 그 후에 요한은 또 무엇을 보고 들었는가?
“내가 또 보고 들으니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계 5:11~14).
장로들의 찬양은 다시 천사들의 찬송으로 이어진다. 요한은 천천만만 의 천사들을 보았다. 그들이“죽임을 당하고 다시 산 어린양”즉 그리스도의 덕을 중심으로 찬송하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은 일곱 종류의 찬사 즉‘능력, 부, 지혜, 힘, 존귀, 영광, 찬송’을 받으시기 합당한 자이시다. 이 일곱은 완전한 찬사를 의미한 것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완전하신 품성을 묘사한 것이다. 천사들의 찬양은 다시 확대되어 마침내 전 우주의 합창으로 클라이맥스에 이르게 된다. 그들은“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고 찬송한다.
제5장은 이렇게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에 대한 만물의 합창으로 끝을 맺고 있다. 그리고 네 생물은“아멘”으로 화답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한다.
명상할 문제
요한계시록을 읽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진심으로“아멘”이라고 부르짖게 된다. 마지막 날 예수께서 다시오실 때,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찬송하는 무리 가운데 들어있기를 원한다면 지금 우리에게 결단이 필요하다.
천만 천사들이 노래하고 온 우주가 하나님의 사랑을 찬송하는데, 은혜와 구원을 받은 당사자인 우리들이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배은망덕하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