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의 사후 개념에는 심판의 개념이 약하다. 누구나 다 죽어 저승에 간다. 그 저승이 어디에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곳에서는 지상에서 선하게 산 사람이 특별히 복을 받는다는 구체적 사상이 약하다. 악하게 산 사람도 그것 때문에 사후에 벌을 받는다는 생각도 별로 나타나 있지 않다. 그것이 아마도 우리 나라 사람들이 사회적 윤리관이 약한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친분이 있는 관계이거나 가족 사이에는 그래도 아직 유교적 윤리관이 지배하고 있어 건전하지마는 일단 모르는 사이에 들어가면 샤마니즘의 윤리관이 작동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살벌하게 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0장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최후의 대심판이다. 거기서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 각 사람들은 정확히 자기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
* 마침내 모든 죄와 불의 그리고 사망의 근원인 사단의 최후가 온다. 신음하던 죄악 세상의 피조물들과 구원받은 성도들도 그리고 온 우주의 거민들도 이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반역이 일어난 다음 우주는 죄의 결과들을 목도해야 했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탄생하여 잔인한 죽음을 당하시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이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도 끝났다. 하늘 천사가 내려와“용을 잡으니 곧 옛 뱀 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20:1~3) 천년이 차기까지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
사단은 자기가 저지른 죄의 참담한 결과들을 보면서 천년 동안이나 고통을 당하여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20장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사단이 황폐한 지구에 천년 동안 결박당하고 구원받은 의인들은 천년 동안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심판에 참예하는 장면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계 20:1~5).
천년 후에 사단은 잠시 놓임을 받아 부활한 악인들을 선동하여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한 최후의 공격을 시도하지만 하늘에서 유황 불이 내려와 모두 멸망당하고 말 것이다(계 20:6~10).
마지막 멸망 전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대심판이 있을 것인데 그때 모든 악인들은 둘째 부활 혹은 심판의 부활이라고 부르는 부활을 통하여 다시 살 게 된다. 이것은 심판을 위한 부활이다.
그리고 각 사람의 행한 대로 형벌을 받게 되며, 결국에는 둘째 사망이라고 부르는 영원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계 20:11~15).
1. 사단의 처지가 어떻게 되었는가?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계 20:1~3).
하늘에서 내려와 사단을 잡은 천사는 누구인가? 그 손에 가진 무저갱의 열 쇠와 큰 쇠사슬이란 무엇인가? 또 무저갱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며 사단을 천 년 간 결박해 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수수께끼 같은 위 의 절에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이 참으로 많다.
사단을 결박하는 이 강력한 천사의 신분을 추측할 수 있는 힌트는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신약 성경에서는 그리스도만 열쇠를 가진 분으로 나타난다. 그는“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계 1:18)으며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리스도는“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계 3:7) 분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사단을 붙잡아 결박할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무저갱이란 재림으로 황폐된 이 세상을 말하며 무저갱의 열쇠를 가졌다는 것은 사단을 결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0장 2절에는 용의 정체가 폭로되어 있다. 용은“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는 것이다. 사단의 네 가지 다른 이름은 이미 12장 9절에 서 나온 것들이다.
그러므로 용은 사단이요 용이 돕고 있는 짐승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세력이나 나라를 의미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는 용을 붙잡아 결박하여 무저갱에 가두고 천년 동안은 사람들을 미혹할 수 없도록 하였다.
사단이 마수를 뻗칠 대상자인 성도들은 모두 하늘에 있으며 기만당하고 미혹된 악인들은 모두 죽어서 시체가 되어 있기 때문에 사단은 마치 무저갱에 결박된 것과 같은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담의 타락 이후 지구에서 조금도 쉴 사이 없이 기만을 일삼아온 사단에게는 정말 견딜 수 없는 형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단이‘잠깐 놓인다’는 것은 그가 미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잠깐 동안 부활할 것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2. 구원받은 성도들은 1000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 20:4~6).
요한은 사단이 황폐한 지구에 결박되는 무서운 장면을 떠나 성도들이 살고 있는 하늘을 보도록 허락을 받는다. 요한은 각 시대를 통하여 환란과 핍박을 이겨낸 성도들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굴복하지 않고 승리한 성도들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 노릇하는 영광스러운 광경을 본다. 왕 노릇한다는 것은 누구를 다스린다기보다는 하늘에서 그들이 누리는 기쁨과 영화를 말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받지 못한 무리들과 악한 천사들을 심판하는 일에 동참하는 특권을 의미한다(계20:4; 고전 6:2~3).
부활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예수 재림 시에 구원받을 의인들이 살아나는 부활이 있다. 이때 아담과 하와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았던 신실한 모든 사람들이 부활할 것이다. 이것을 첫째 부활 혹은 생명의 부활이라고 한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부활 은 영원히 살기 위해 부활하는 생명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부활은 1000년 후에 마지막 대심판 직전에 있다. 이때는 복음을 거절한 모든 악인들이 심판을 받기 위하여 부활한다. 이것을 둘째 부활 혹 은 심판의 부활이라고 한다. 심판을 받고 죽기 위해 부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은 다음 어느 날 다시 눈을 떴는데 재림의 광경이 보이면 우리는 하늘로 가기 위하여 생명의 부활을 한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이 보이면 우리는 심판을 받기 위해 1000년 후에 부활한 악인들의 무리 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느 부활에 참여할지는 전적으로 오 늘 우리의 결정에 달려 있다. 성경에서 의인과 악인은 윤리적인 죄의 크고 작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복음에 순종하느냐 거절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오늘 그대는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3. 1000년 후에 이 지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7~10).
의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1000년 동안 하늘에서 심판하는 일을 마친 후 이 지상에는 거대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1000년 동안 하늘에서 성도들의 처소가 되어 있던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성은 성도들과 함께 이 지상에 내려와서 성도들의 진영이 된다. 동 시에 바다 모래같이 무수한 악인들이 부활하여 이 세상을 채운다. 다시 할 일을 찾은 사단은 동분서주하며 부활한 악인들을 선동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새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여 그 성을 빼앗으려고 한다. 곡과 마곡은 고대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들의 이름이다. 곡은 마곡 땅의 임금의 이름이다(겔 38:2). 여기 서는“곡과 마곡”이“땅의 사방 백성”과 동격으로 쓰였다. 즉 성도들을 미워하는 땅의 사방 백성들을 미혹하여 싸움을 붙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때“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시킨다. 이것이야말로 악인들의 최후이며 베드로 후서에 기록되어 있는“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는”(벧후 3:7, 10) 무서운 날인 것이다. 모든 악인들은 그 보응을 받아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로 소멸되고 그 불로 모든 것이 정결하여져서 마침내 신천신지가 이루어진다. 마침내 새롭게 된 이 지구는 성도들의 영원한 처소가 되는 것이다. 마귀와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불과 유황 불에 던져져 세세토록 괴로움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정말 지옥이라는 곳이 있어서 죄인들이 영원히 고통을 받 는 것일까? 성경을 자세히 연구하면 그런 식의 지옥 개념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세토록”혹은“영원히”불에 탄다는 것은 꺼지지 않고 끝없이 탄다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식 개념으로는 완전히 혹은 충분히 소멸된다는 뜻이다. 유다서 7절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는“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았다고 되어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마지막 심판의 예표다.
그렇다면 그 영원한 불은 지금도 타오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다만 소돔과 고모라는 그 흔적을 찾을 길 없이 완전히 없어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영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완전하고도 철저한 불의 형벌을 의미한다. 즉“그 뿌리와 가지를 살라 남기지 않는”그런 불의 형벌을 영원한 형벌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예레미야 17장 27절에서 예레미야는“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케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고 말하였다.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불순종하여 몇 년 후 예루살렘 궁전은 불에 삼킨 바 되었다.
그러나 그 불이 지금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꺼지지 않는다는 예레미야의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시 예루살렘 궁전이 완전히 타서 재가 되어 없어질 때까지(벧후 2:6) 타오를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4.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계 20:11).
“크고 흰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의 순결함과 의로움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피하여 없어진 것으로 표현된 땅과 하늘은 죄악 세상의 땅이다.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벧 후 3:12)질 것이기 때문이다.
5. 마지막 대심판의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 20:12~15).
여기서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벌어질 마지막 대심판의 장면을 보고 있다. 1000년 동안에 죽은 자들에 대한 심판이 행해진다.
마지막 심판을 1000년 후에 하는 이유를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악인을 심판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온 우주가 납득하고 본인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충분한 심사 과정도 필요할 것이고 그 심사과정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감사와 찬양은 날마다 더 깊어질 것이다.
또한 사단에게는 1000년 동안 지구에 갇혀 자기가 저지른 죄의 참담한 결과들을 보면서 고통을 받는 형벌의 기간이 될 것이다.
심판 시에는 세 종류의 책들이 펴 놓여진다. 책들과 생명책과 기념책이 그것이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을 때 그 앞에 펴놓인“책들”이란 아마도 죄의 기록책일 것이다. 생명책은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놓은 책이다. 기념책(말 3:16)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천년기가 끝나자 많은 죄인들이 바다에서 땅에서 부활할 것이다. 바다도 무덤도 각기 자기 품 속에서 죽은 자들을 내어 놓는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웠다”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죽음이 없다는 뜻이다.
명상할 문제
우리 앞에는 이제 곧 선과 악의 대 드라마가 펼쳐질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가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예수를 믿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거절한 사람들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날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성경의 엄숙한 말씀이다. 내가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오늘 결정해야 한다. 내일은 우리에게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