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주를 만난 사람들
예수님께서 드디어 하나님의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사단과 싸워 이기신 예수님께서 다시 요단강가에 오셨어요. 그 때에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사람이 내가 말하던 구세주입니다. 나는 전에 이 사람을 알지 못하였으나 이 사람이야말로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의 말을 듣고 그들이 기다려 왔던 구세주께서 오신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다음 날 침례 요한이 안드레와 요한 두 제자를 데리고 서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 곳에 오셨어요. 요한은 예수님을 보자 두 제자에게 그분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소개하였지요.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구세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니까요.
두 제자는 곧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라오는 두 사람을 보시고는 걸음을 멈추셨어요. 그리고 뒤를 돌아보시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구하느냐?”
“선생님, 어디서 머무르십니까?”
“와 보라.”
이러한 대답을 듣고 그들은 기쁨으로 예수님을 따라가 그 날 저녁 늦게까지 하나님의 복된 말씀을 들었답니다(요한복음 1장 31~39절 참조).
다음날 아침 일찍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매우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세상의 임금으로 오신 예수님과 지내며 여러 가지 하늘의 기별을 듣고 왔거든요. 두 사람은 너무 기쁜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 중 한 사람이었던 안드레는 그의 형인 시몬에게 가서 자랑했습니다.
“우리가 메시야(그리스도, 구세주)를 만났다”(요한복음 1장 41절).
그리고는 형 시몬을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갔지요.
예수님은 시몬을 보시자 그의 이름부터 지어 주셨습니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요한복음 1장 42절).
새로운 이름을 받은 시몬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훌륭하심에 놀라 그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분이야말로 정말 내가 기다리던 구세주구나.”
이튿날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향하여 걸어가실 때에 또 다른 사람 빌립을 만나게 되었어요. 예수님은 그도 택하셨습니다.
“나를 좇으라”(요한복음 1장 46절).
빌립도 안드레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으면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언제나 만날 날을 기다려 오던 참이었기 때문에 매우 기뻐하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또 이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서 자기의 친구인 나다나엘에게 달려갔지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한복음 1장 45절).
그런데 나다나엘은 그 당시 나사렛이 아주 나쁜 동네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이 말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한복음 1장 46절).
그래도 빌립은 ‘와 보라’고 하며 나다나엘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나다나엘의 모습을 다 꿰뚫어 보고 있었으며, 그의 사람됨을 자세히 알고 계셨기에 다가오는 빌립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요한복음 1장 47, 48절).
나다나엘은 너무나 놀라서 주님 앞에 고백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한복음 1장 49절).
그 후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답니다.
열두 명의 제자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를 산보하고 계실 때 베드로와 안드레가 배를 타고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이 일하는 것을 보시고 가까이 가서 그들을 불렀어요.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태복음 4장 19절).
사람을 낚는 어부!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두 사람은 깜짝 놀랐으나 그 뜻은 알 수 있었답니다.
예수님은 말씀 속에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밝히고 계셨던 거예요. 그분은 바로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여 하늘나라로 데려가려고 오신 것이었어요.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가르치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하늘의 기별을 전하는 일을 맡기셨어요. 그들은 곧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로 마음먹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조금 가다가 그들은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만났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도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도 베드로나 안드레처럼 그 즉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아버지와 작별한 뒤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직접 제자를 찾아서 택하셨던 것입니다. 택함 받은 자들은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뻤을까요?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한 아쉬움도 그 큰 기쁨 속에 묻혀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을 데리고 거리로 지나가시게 되었는데, 그 때 성문 곁에 세리 마태가 앉아 있었지요. 마태는 성문 곁에서 혹은 집집을 방문하여 세금을 거두는 일을 했어요.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를 가장 나쁜 사람이라고 미워하며 함께 먹지도 않았어요. 왜냐하면 세리들이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받아서 자기들의 집을 짓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저주받은 사람들’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예수님이 그 마태를 부르시는 거예요.
“나를 따르라.”
마태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스스로 늘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전에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을 때도 ‘나 같은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을 거야’하며 희망조차 갖지 못했는데 예수님의 초청이 그의 귀에 들린 것입니다.
그는 너무나 기뻤어요. 지금까지 망설이던 어두운 그의 마음에 한 가닥 밝은 빛이 비친 셈이지요. 마태는 성문 곁에 책상을 놓고 앉아서 일을 하고 있다가 그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이렇게 하여 제자의 수는 점점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제자 가운데는 어부도 있었고, 세리도 있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직업을 가진 자들로 열두 명을 특별히 선택하여 제자로 삼으셨던 것입니다(누가복음 5장 27, 28절).
열두 제자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의 이름입니다(마태복음 10장 2~4절).
베드로라 하는 시몬,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
도마,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 가룟 유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라고 처음부터 훌륭하고 학식이 높은 사람들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결점이 많은 사람들이었지요. 어떤 사람은 화를 잘 내었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받게 되었고, 또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높은 자리를 하나 얻어 보려는 야심 많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이기적이어서 자기만 잘 되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자들이었으며, 심지어 남을 헐뜯고, 멸시하는 사람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일지라도 예수님과 같이 생활하는 동안에 점점 좋은 사람이 되어 갔어요. 특히 화를 잘 내던 요한은 제자 가운데서 가장 온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베드로도 화를 잘 내고 성격이 과격해서 생각 없이 말을 하여 자주 실수하곤 했는데, 예수님의 감화로 성격이 변하여,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제자들의 중심인물이 되어 훌륭한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어떤 때에는 베드로의 힘 있는 설교를 듣고 하루에 삼천 명이나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온 적도 있었답니다.
물론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처럼 큰일을 많이 하였지요.
때로는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고, 또 수없이 매를 맞는 일도 있었으나, 모든 제자들은 어떤 일을 당하든지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끝까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못 박혀 죽고, 목 베임을 당하고, 또 창에 찔려서 죽기도 하였으나 그들은 하늘나라를 생각하며 예수님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제자 중 한 사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지 않고 배반하고 말았는데, 그는 누구보다도 많이 배운 자였으며,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으므로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신임을 받아 회계의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소부터 그는 욕심이 많아 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만 생각하다가 마침내 사단의 노예가 되고 만 것이지요. 유다는 다른 제자들처럼 훌륭한 제자가 되지 못하고 적은 돈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하기에 이른 것이랍니다.
이것은 유다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으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에요.
자, 여러분들은 어떤 모습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나요?
베드로 같은 사람, 아니면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인가요?
예, 당연히 예수님을 잘 따르는 제자가 되길 원하겠지요.
옳은 일을 위하여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하고 친절하고 부드러운 사람!
예수님과 같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제자들처럼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랍니다.
예수님을 잘 따르는 제자가 될 거예요!
훌륭한 제자가 될 수 있었던 청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천국 복음을 전파하실 때 지위가 높은 관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어요.
그는 무릎을 꿇고 애원하듯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태복음 19장 17절).
이 사람은 살아오면서 늘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절하고 부드럽게 그 청년을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어느 계명이오니까?”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마태복음 19장 17~19절).
이것은 옛날부터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율법인 십계명이었어요. 하나님께서는 아주 옛날부터 사람이 꼭 지켜야 할 규칙들을 이렇게 세워 주셨거든요.
그 청년은 어려서부터 이 계명을 충실히 지키고 있었다고 생각했던가 봅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마태복음 19장 20절).
예수님은 청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시다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마태복음 19장 21절)고 말씀하셨어요.
청년은 한참 동안 망설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이 옳은 줄 알면서도 재물이 많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갔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떠나가는 것을 보고 참 아쉬워하셨어요.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면 훌륭한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생활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더 깊이 느꼈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함께 지낸 시간이 3년 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의 마음속에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매일 듣는 훌륭한 이야기들, 또 이 세상의 지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이적들….
이 모든 것들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도 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답니다. 따라서 그들은 비록 어부와 세리 출신으로 학문적인 바탕이 거의 없는 무지한 사람들이었지만, 때로는 왕의 궁전에서, 때로는 의회에서, 심지어는 유명한 학자나 헬라의 철학자들에게까지 아무 두려움 없이 하늘나라의 깊은 진리를 설교할 수 있었던 거예요.
이처럼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분의 제자들에 의해 예루살렘으로부터 점점 다른 지역으로 퍼지고, 또 그들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여 더욱더 멀리 퍼져 나가서 지금은 온 세상에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이랍니다.
예수님 생애의 기록과 행하신 모든 이적들은 성경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복음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늘에서 우리들을 위하여 좋은 집을 마련하고 계신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약속이었지요. 그 준비가 다 끝나면 예수님께서는 다시 많은 천사들을 거느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맞을 준비를 잘한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다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신다고 하셨어요.
만일 우리가 지금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면 그 날은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의 날이 되겠지요?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고 계신답니다.
여러분!
우리도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는 없을까요?
그분을 친구처럼 모시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그분의 사랑을 맘껏 받았으면 좋겠어요.
다음 과에서 우리는 다정한 친구로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을 다시 만나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