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의 중요한 질문과 관심사는 어떻게 이 세상이 만들어졌으며, 동물과 식물은 어떻게 이 세상에 생겨났는지, 또 사람은 어떻게 등장했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질문은 사람들의 단순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올바른 인생관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이에 관하여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대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토마스 헨리 헉슬리가 말한 ‘불가지론(不可知論)’입니다. 이것은 먼 옛날의 일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잘 모르겠다는 주장입니다.
둘째는, 찰스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進化論)’사상인데, 어떤 단순한 영태(아메바) 또는 혼돈상태(빅뱅과 같은)가 진화의 과정을 밟아서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세계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창조론(創造論)’으로 성경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자연 과학적으로 증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연 과학은 과학적 사실 위에 바탕을 두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이 세상을 무에서 창조했는지를 사람들이 증명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약 성경 욥기에는 하나님께서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기 38장 4절)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생기기도 전에 있었던 일을 사람이 어떤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의 창조는 과학자가 실험실 안에서 시험관을 가지고 실험함으로써 증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창조를 설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결과에서 원인을 추리하는 귀납적 방법을 쓰거나 어떤 가정 아래 그것을 풀어 쓰는 연역적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런 추리나 풀이가 반드시 정확한 결론을 가져올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진화론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주장한 사람이 있었지만 근대의 진화론은 영국의 생물학자인 찰스 다윈이 <종(種)의 기원(起源)(Origin of the Species)>을 저술함으로써 온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진화론은 순전히 가설(假說)을 기초로 한 자연 도태(自然 淘汰)와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이론으로, 자연계에 있어서 그 생활 환경에 적응하는 생 물은 생존하고, 그렇지 못한 생물은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그러므로 이것 은 완성된 과학이 아니라 일종의 학설에 불과한 것입니다.
일본 평범사(平凡社)가 발행한 대백과사전 중에서 <진화론의 경향>이라는 항목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면 진화론은 생물학계에서 광범위하고 확실하게 신뢰하는 이론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이론에 대해서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특히 최근에 이런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장 하는 핵심적인 요점은 오늘날의 진화론을 입증하기에는 그 자료나 결과가 매우 불충분 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화론을 진리인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뿐 아니라 진화론에서는 물질 자체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는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다만 생물이 미생 물에서부터 고등 동물로 발전하여 마침내 사람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세계의 기원(起源)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은 생각 할 필요조차 없고 진화론에서도 만족할 만한 결론을 얻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세 번째 주장인 성경의 창조를 검토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입니다. 우리가 과학으로 찾을 수 없 는 진리를 철학이나 종교로 찾는 것은 지성적인 자세인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 1장 1절에 기록하기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 조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간단하고 분명하며 확실한 표현입니다. 시편의 저자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 도다” (시편 33편 6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무슨 다른 이론(異論)이 없습니다. 다만 사실을 사실로 인정했을 뿐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어떻게, 얼마 동안에 이루어졌는지 살펴봅시다.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 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태초에는 이 지구가 많은 물로 둘러싸였고 흑암 과 공허뿐인 혼돈한 세계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 첫째 날 > 첫째 날에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세기 1장 4, 5절).
여기서 아침과 저녁이라고 말한 것은 지구의 자전(自轉)으로발생한 1일(晝夜), 즉 24시간을 뜻하는 것임을 우리는 쉽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진리를 진화론과 일치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창세기의 1일이 10만 년 또는 수백만 년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모순된 생각일 뿐 아니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 의 능력을 의심하는 태도입니다.
< 둘째 날 >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 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 매 그대로 되니라” (창세기 1장 7절).
하나님이 공기를 만들 어 물을 지표면(地面)과 공간(空間)에 나뉘게 하셨 습니다. 또한 공간에 증기층(蒸氣層)이 있어서, 지구는 한대(寒 帶)나 열대(熱帶)의 구별이 없이 기온이 일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증기층은 노아 홍수 때에 사라진 것으로 판단됩니다. 오늘날 시 베리아의 얼음덩어리에서 ‘매머드’라는 열대산 코끼리의 언 시체가 부패되지 않은 채 파묻혔던 그 상태 그대로 발굴된 것은 그 창조의 증거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 셋째 날 >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 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 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 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 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 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 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 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장 9~12절).
하나님이 땅의 물을 한곳으로 모으고 육지가 드러나게 하셨으며, 그 육지에는 풀과 곡식과 나무들을 자라게 하셨습니다.
< 넷째 날 >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창세기 1장 15절)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즉 하늘의 천체, 해와 달과 별들이 이날에 지구와 관계를 맺고 빛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 다섯째 날 >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 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 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장 20~22절).
하나님이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를 각각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 여섯째 날 > “하나님이 가라사 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 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장 24, 25절). 하나님이 육축과 곤충과 땅의 짐승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 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모든 생물을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만일 한 종류만 창조해도 여러 종류로 변할 수 있었다면 종류대로 창조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 유명한 멘델의 법칙에 따르면, 생물의 종류는 결단코 다른 종류 로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하 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장 26~28절).
이리하여 사람은 만물 가운데 가장 고귀한 존재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의미를 깨달을 때에 인생관이 달라지고 생애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변화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업은 6일 만에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세기 1장 31절). 이 와 같이 6일 동안에 창조 사업이 다 이루어지매 하나님께서 제7일을 안식일로 구별하시 고 이날을 창조의 기념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날을 지킬 때마다 하나 님의 창조 사업을 기억하고, 그분께 예배하고, 그분의 사랑을 감사함으로 복을 받게 되 었습니다. 그러므로 인류가 태초로부터 이 귀한 안식일 제도를 계속하여 거룩하게 지켜 왔었다면 오늘날의 불가지론이나 진화론처럼 불신의 사상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내용을 종합해 보면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습니다. 먼저 공간 을 만드시고 그 공간에 채우신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창세기가 만들어 낸 이야기 가 아니라 실제의 사실을 기록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일자, 연대, 장소, 인명, 연령, 족보까지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하고 물질주의가 성장함에 따라 진화론과 무신론이 온 세상에 상당하게 널리 퍼졌습니다. 심지어 종교를 미신으로 돌리고 “신이란 것은 사람들이 가상적으로 만들어 낸 개념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특히 유물론은, 눈으로 볼 수 없으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못할 여러 가지 증거가 많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양심이 스스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더구나 우리 한민족(韓民族)은 옛날부터 하나님을 천지 만물의 지배자로 믿어 왔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심이 전능하신 하나 님를 신뢰해야만 만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사람은 하 나님을 분별해서 알 만한 영적 능력을 스스로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은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로마서 1장 19절)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생애에는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 으나 마음으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기이한 경험이 많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하여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존재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우리가 이 세상의 만물을 바라볼 때 창조주가 계신 것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원인 없는 결과는 없고, 모든 것은 그 만든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로버트 잉거솔’이라는 미국의 한 불가지론자가 ‘헨리 와드’라는 유명한 설교자 의 집을 찾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응접실에 들어가니, 거기에는 밤하늘의 별자리들을 그려서 만든 훌륭한 지구본이 있었습니다. 그가 주인을 향해, “이것 참 환상적입니다. 누가 만든 것입니까?” 하고 물으니, 주인은 서슴지 않고 “만들긴 누가 만들어요. 저절로 그 렇게 되었지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물론 잉거솔이 그 대답에 만족했을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잉거솔이 평소에 그 자신이 주장한 대답이었습니다.
이 아름답고 기묘하며 너무도 질서 정연하고 조직적인 천연계를 볼 때 이것이 저절로 우연히 생겼다고 바라보기는 어렵습니다. 반드시 어떤 초월자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타당한 생각입니다. 즉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장 20절).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 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이사야 40장 26절).
위의 두 성경 말씀과 같이 우리가 모든 우주 세계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신성과 그 무한하신 능력을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구약 성경 맨 처음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라는 아주 확실하고 장중(莊重)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한마디 말씀이 방황하는 우 리의 마음에 얼마나 확고한 기초를 놓아 줍니까? 이 말씀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확립시켜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허다한 신 가운데서 오직 참신, 곧 참하나님을 찾아 알고 그에게 경배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떤 신이 참신이요, 참하나님일까요?
“오직 여호와는 참하나님이시오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한 왕이시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여호와께 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예레미야 10장 10~12절).
과연 세상에 허다한 신이 있으나 이 세계와 만물을 짓지 아니한 신은 참하나님이 아니요 우리가 존경하고 신뢰하고 경배할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참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참하나님이십니다.
종종 대홍수라고 불리는 고대의 엄청난 홍수의 이야기는 세계 전역에서 나타납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지구의 역사에 대한 성경적 기록의 타당성을 평가할 때 특별한 관심사가 됩니다.
가장 중요한 성경 밖의 홍수 이야기가 고대 바벨론의 뛰어난 문학 작품인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옵니다. 그것은 니느웨를 발굴하는 동안 기원전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앗시리아 왕 앗술바니팔(Ashurbanipal)의 유명한 서고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설화에 의하면 신들이 우트나피시팀에게 장차 있을 홍수에 대비해 방주를 지어 생명체들을 보전하도록 경고했다고 합니다. 우트나피시팀이 방주를 건조한 후 가족들을 데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자 예정대로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방주가 니시르 산에 도달하자 그는 비둘기와 제비, 까마귀를 방주 밖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비둘기와 제비는 방주로 되돌아왔지만 까마귀는 물이 줄어든 것을 보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방주 밖으로 나온 우트나피시팀은 신들에게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홍수 설화가 창세기의 노아 홍수 기사와 단 두 곳만 상충될 뿐 거의 일치함을 발견했습니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두 이야기가 서로 관련이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바벨론 홍수 설화 이외에도 학자들은 전 세계로부터 약 270여개의 홍수 이야기를 수집해 왔습니다. 그것들의 지리적 분포가 일정하지 않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전 세계에 걸쳐 있습니다. 많은 학자가 대홍수의 이야기들이 본질적으로 거의 모든 인류와 함께 존재한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비정상적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홍수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은 모든 이야기가 지역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전 세계적 홍수 이야기는 충분한 확실성을 가지고 있습니다.